전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예민해져있던 지난 12일,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다래월드의 생산공장은 눈코뜰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항균 손세정제 주문이 폭주한 탓이다. 공장 앞 진입로에까지 가득 들어차있던 포장용기를 보며 놀라고 있던 기자에게 이정옥 다래월드 대표는 "지금은 그나마 원료가 떨어져서 공간이 생긴 편"이라며 "오늘 저녁에 원료가 들어오면 다시 정신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예비 사회적기업에 이어 지난해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된 다래월드는 매출이익의 70%를 일자리 제공, 재능기부, 물품후원 등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안양시 내 다른 사회적기업의 멘토링을 통해 판로지원이나 경영애로 해소에도 나서고 있다. 관내 복지관 등의 장애인사업장에 라벨부착, 포장 등의 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어려운 이웃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다른 업체와의 거래도 이뤄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체직원 15명 중 8명이 60대 이상, 직원 평균나이가 64세에 이를 정도로 고령층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2001년 창업…누군가는 해야한다는 고집으로 버텨온 15년
지난 2001년 컴퓨터클리너를 만드는 업체로 탄생한 다래월드는 이듬해 다목적 항균세정제 개발·생산에 나선다. 당시 미국에서 백색가루 형태의 탄저균이 담긴 우편물이 배달되는 것을 본 이 대표가, 세제효과에 소독기능까지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업계 중 한 군데만 부여하는 우수품질(EM) 인증도 획득했다. 이후 단체급식용 세제, 샴푸·린스 등도 속속 출시했다.
다래월드 이정옥 대표
이 대표는 "당시 시중에 나와있던 닦고, 빨고, 감는 제품들이 기능 자체에만 집중하던 상황에서 피부보호도 되고, 환경파괴도 덜 하는 제품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인증 기준도 없던 상황에서 정부부처에 기준을 만들어달라는 제안까지 해가며 인증을 받았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만 해도 세제는 강하게 만들어서 거품이 잘 나고, 잘 닦이면 된다는 통념이 있었어요.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나선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요. 실제로 친환경제품 개발에 나섰다가 망한 회사도 많았기에 그분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지요."
이 대표는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을 두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고집으로 버텨왔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술회했다.
◇대형업체 ‘갑질’로 어려움…아이쿱 생협 납품 등으로 위기돌파
제품 개발 후 자리를 잡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대형업체들에게 이른바 '갑질'을 당하며 속앓이를 한 적도 있었다.
"한 식품업체에 납품을 했는데 몇 달동안 대금도 주지 않고 있더니 갑자기 반품을 하겠다는 거예요. 울며 겨자먹기로 새로 납품한 제품은 저희에게 일언반구 없이 판촉물이라고, 돈을 못주겠다고 통보해 왔고요. 그 사이에 담당자도 바뀌어버리고, 법무팀과 해결하라는 답만 들을 수 있었죠. 해당 대금은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업체는 다래월드의 유사제품을 덤핑 납품하는 방식으로 대리점도 뺏어가기까지 했다고 이 대표는 밝혔다.
한 유통업체는 3억원 상당을 주문하며, 물건을 팔지 못했을 때 이를 반품받는 조건으로 계약조건 수정을 요구해 왔다. 행사진행을 위해 현금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두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재고처리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토로했다.
어려움을 겪던 중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 사태는 다래월드 사업반등의 계기가 됐다.
"2004년 중소기업청에서 기술혁신개발과제 자금을 받아 친환경 세정제를 개발, 이듬해부터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는 상황이었어요. 신종플루 우려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알콜 주정을 재료로 하는 손세정제는 성분이 강하다보니 학생들의 손에 직접 쓰기에는 부담이 있어 저희 제품을 찾게 된 것이죠. 저희가 국내에서 유일한 친환경인증 손세정제 생산회사였으니까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공장 주위 교통이 마비되자 교통경찰이 출동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왔고, 보유한 스티커 라벨이 떨어져 손으로 제품명칭을 적어 보낼 정도였다.
2010년 아이쿱 생활협동조합에서 샴푸남품 의뢰가 들어왔다. 회원 수 100만명에, 저렴한 가격에 안전한 친환경제품을 공동구매하는 아이쿱 생협과 다래월드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계약이 이뤄졌다.
"생협에서는 각종 방부제나 포름알데히드, 중금속 등이 들어가지 않은 샴푸개발을 해줄 수 있냐고 의뢰해왔는데, 사실 저희가 2007년에 개발해놓고 있었던 제품이었어요. 시중 제품보다 계면활성제도 4분의 1로 줄였고 그마저도 식물성으로 했고요. 당초 예상보다 제품이 잘 팔리자 생협에는 이후 섬유유연제와 바디워시, 손세정제 등 다양한 제품을 납품하고 있어요."
아이쿱 생협은 현재 다래월드의 가장 큰 거래처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래월드의 샴푸, 린스, 바디워시 이미지컷. 사진/다래월드
◇"사회적기업 인증 상관없이, 맡겨진 역할 다할 것"
이 과정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채용한 60대 이상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다며 만족해하시는 거예요. 2011년 회사가 경기도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이분들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현재 다래월드에는 8명의 60대 이상 어르신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 평균나이도 64세에 이른다.
지난해 5월에는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지만 사실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원래부터 매출이익의 70% 가량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던 다래월드는 다른 사회적기업의 멘토 역할을 하거나 일거리가 필요한 장애인사업장에 발주하는 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메르스로 인해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관내 보건소에 세정제 1000개를 추가 기부하기도 했다.
다래월드는 조만간 공장을 경기도 여주로 옮길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도 전원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연세도 많고, 즐길 시간이 필요한 분들이기에 같이 내려가는데 부담이 있을 수 있음에도, 공장 부지를 보시고는 데려가달라고 도리어 부탁해 오시더라고요. 나이가 있음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점과, 일하는 것이 남을 돕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 공감하시는 분들이기에 그런 결정을 하셨다고 봐요. 추가로 필요하게 된 기숙사 건립비용은 근로복지공단의 저리대출을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지난 8~12일 다래월드에서 현장체험을 한 각 정부부처 신임 사무관들이 이정옥 대표(사진 가운데)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다래월드
이 대표는 다래월드의 사훈인 '우리는 하나, 신나는 일터'에 걸맞는 경영을 지속할 뜻을 밝혔다.
"직원들이 다래월드에 와서 가족같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다는데 만족해요.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평생 갈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제게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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