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 포스터 (사진제공=무비꼴라쥬)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지난 10월 23일 영화 <카트> 언론시사회가 끝난 뒤 천우희가 취재진과 합석하자 한 영화계 고참기자는 "앞으로 시상식 많잖아. 아마 천우희가 신인여우상 타고 내년부터는 펄펄 날아다닐거야"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 잘 될 배우"라고 칭찬했다. 갑작스러운 기자들의 칭찬에 천우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20년 넘게 많은 배우들을 만나며 안목을 키운 그 기자는 반은 맞췄고, 반은 틀렸다. 신인여우상을 예상했지만, 천우희는 시상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지난 17일 서울 세종문회관에서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천우희는 <한공주>를 통해 '청룡의 꽃'이 됐다.
이날 시상식에서 자신이 호명되자 그는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쏟아냈다. 겨우 추스린 후 카메라 앞에 선 천우희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상태였다. 자신의 수상을 예견하지 못한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고, "다들 수상소감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뭐라 말해야 되지"라며 혼잣말을 되내였다.
"이렇게 작은 영화에 또 유명하지 않은 내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던 중 또 한 번 터지는 눈물에 고개를 숙였다. 그 눈물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기쁨과 감동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 울음에는 자신의 힘겨운 노고도 영향을 끼쳤을테다. 천우희가 출연한 <한공주>는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정작 가해자들을 피해다니며 살아가는 여고생 한공주 역을 연기했다.
<한공주>와 관련한 인터뷰 당시 천우희는 "앓듯이 연기했다"고 했다. 공주를 연기한 뒤 일주일동안은 몸도 마음도 아팠다고 했다. 그만큼 힘들었던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 속 한공주는 깊게 상처받은 감정을 안은채,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갖고 발버둥을 친다.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아도, 대사가 없어도 그가 짓고 있는 표정만으로도 그 힘겨운 심정이 전달된다. 시상식 전부터 기자들 사이에서는 "천우희가 여우주연상을 받아야만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른 여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연급 자리를 차지하며 쭉쭉 성장한 것과 달리 천우희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지난 2004년 영화 <신부수업>에서는 지나가는 여학생 역으로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고, <마더>에서는 어린 나이에 옷을 벗었다. 옷을 벗었지만 다른 여배우들처럼 예쁘게 나온 장면은 아니었다. <써니>에서는 본드를 마신 독한 여고생이 됐고,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동생의 잘못을 억지로 끌어안았다. 대부분이 큰 비중이 있는 역할이 아니었다. 항상 천우희는 정중앙보다는 그 옆자리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비췄다.
예쁘게 웃는 얼굴 한 번 보여주지 못하고, 가벼운 로맨스 한 번 못해보고 힘든 길만 걸어왔던 이 20대 여배우는 <한공주>로 꽃을 피웠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선지 딱 10년이 되는 2014년 천우희는 여우주연상이라는 타이틀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10년 동안 돌고 돌아 올라선 최고의 위치다.
"이 상은 앞으로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겠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배우 생활하겠습니다. 또 앞으로 더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과 가능성이 열리길 바랍니다. 좋은 연기 보여주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최고의 위치에 선 천우희는 울음을 멈춘 뒤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이었다. 진부할 수 있는 이 말들이 천우희의 입을 거친 뒤에는 진심어리게 느껴졌다.
선배 배우들의 사랑도 독차지 하는 그다. 시상식이 끝난 뒤 각종 SNS에는 천우희의 수상에 대한 선배 배우들의 축하글이 쏟아지고 있다. 유준상, 이준기, 신세경, 문근영 등이 자신의 수상처럼 기뻐하고 있다. 다른 배우들이 보기에도 <한공주>에서 천우희의 연기력은 일품이었나 보다.
영화 <카트>를 통해 천우희와 친분이 깊어진 배우 문정희는 이렇게 말했다.
"우희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어떤 감정을 짓고 있는지가 얼굴에서 그대로 묻어나요. 그건 어떻게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재능인 거죠. 우희의 재능이 정말 부러워요. 또 우희는 애늙은이에요. 얼마나 속이 깊은지 몰라요. 정말 좋은 동생을 얻은 것 같아요."
선배도 부러워하고 기자들이 앞다퉈 칭찬하는 천우희는 내년에도 바쁘다. 영화 <손님>과 <곡성> 등을 통해 관객과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시밭길 같았던 과거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밝은 천우희. 이번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그의 집념을 더욱 굳건히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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