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혼인의 실체가 없을 정도로 파탄난 상태에서 일방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더라도 다른 배우자는 바람을 피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0일 A(50)씨가 별거 중인 자신의 아내 B씨와 불륜을 맺은 C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요컨대, 이번 판결은 쌍방 모두 부부생활 유지의 의사가 명확히 없는 등 혼인이 완전히 파탄 난 경우에는 혼인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설령 배우자 일방이 바람을 피웠더라도 부부공동생활의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당연히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은 판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혼인의 완전한 파탄이다. 만일 A씨에게 혼인 유지의 의사가 있다면 혼인이 완전한 파탄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다. 때문에 A와 B씨의 부부공동생활은 유지되고 C씨에 대한 A씨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게 대법원 판단의 취지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불륜의 정도’다. 이번 사건은 A씨의 아내와 B씨가 성관계를 맺은 정도의 불륜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키스나 애무 등 신체접촉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B씨와 C씨가 불법성이 더 강한 성관계를 맺었다면 어떻게 될까? 보통의 경우에는 간통에 해당돼 형사상 처벌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혼인의 실체가 없는 한 성관계를 맺었더라도 불법행위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다수의견은 이 경우 간통이 성립돼 형사상 처벌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이 민사사건이고 실제 간통을 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헸다.
이에 대해 민일영, 김용덕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다만 간통죄의 폐지 여부 등에 관한 논의를 떠나 혼인제도에 관한 성풍속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형사법적인 관여의 범위를 줄이는 차원에서 종래 대법원에서 취했던 간통행위에 대한 유서, 종용의 개념 등을 적절히 보완, 수정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했다. 즉, 간통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것이다.
이번 사건은 A씨가 B씨와 이혼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같았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비록 부부가 아직 이혼을 안했지만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이 파탄되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이르렀다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이를 두고 부부공동생활을 침해하거나 그 유지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며 “이러한 법률관계는 재판상 이혼청구가 계속 중에 있다거나 재판상 이혼이 청구되지 않은 상태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한편, 이상훈, 박보영, 김소영 대법관은 이번 사건이 불법행위 성립과 그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수의견과 같은 의견을 피력했지만 혼인의 실체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부부일방이 배우자로부터 이혼의사를 전달받았거나 ▲재판상 이혼이 허용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제 재판 중인 경우로 한정해야지 이런 상황까지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함부로 불법행위의 성립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별개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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