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지난달 정부가 전격적으로 선언한 쌀 시장개방에 대해 농민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된 정책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일방적 발표를 철회하고 협의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일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쌀 전면개방, 정부가 포기한 것들에 대해'라는 보고서에서 "7월18일 정부가 기습적으로 내년부터 쌀 전면개방을 선언했다"며 "사회적 합의 없이 나온 정부의 일방적 발표이며 쌀 협상에서 자충수를 둔 오류"라고 지적했다.
우리에 앞서 쌀 시장을 연 일본과 필리핀은 국회와 농민 간 협의기구를 구성한 덕분에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우리 정부는 농민과의 소통 없이 정부 주도의 간담회나 설명회 등 요식행위만 진행해 서로 이견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쌀 관세화 협상 테이블에서의 협상을 통해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는데도 우리 정부가 성급하게 쌀 전면개방을 선언하는 바람에 다른 선택 가능성이 배제됐고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 카드를 포기한 자충수를 뒀다는 설명이다.
◇7월18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쌀 관세화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사진=뉴스토마토)
장 부소장은 특히 "쌀 전면개방 선언에 따라 현상유지(관세화를 미루면서 의무 수입물량도 안 늘리는 방안) 권리를 제기하기도 못 하고 이를 규정한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정문상 의무이행의 형평성 문제를 스스로 포기했다"며 "정부는 현상유지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이 문제를 제기할 시간이 없다는 식의 책임회피만 한다"고 주장했다.
장경호 부소장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7월18일 쌀 관세화 개방선언 당시 국내 농업계 보호를 위해 제시한 대안, 고율관세 확보와 특별긴급관세(SSG: Special Safeguard) 부과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장 부소장은 "정부는 쌀에 300~500%의 고율관세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며 "그러나 쌀이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연계돼 미국·중국 등 특정국에는 별도의 관세율을 적용하게 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고율관세를 확보하고 FTA에서 쌀을 양허제외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간 정부가 보인 이율배반적 행동은 불신만 자초해 정부의 의지를 못 믿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정부에 따르면, 특별긴급관세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것으로 쌀 관세화 후 수입물량이 급격히 늘었을 때 부과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이를 "유명무실한 대책이며,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일축했다.
장 부소장이 낸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중국산 마늘 수입이 급증해 국산 마늘값이 폭락하자 여기에 특별긴급관세를 부과했으나 중국이 우리나라 반도체와 휴대폰 등을 거론하면서 통상압력을 가하자 특별긴급관세를 철회한 이력이 있다.
이런 사례를 봤을 때 정부가 미국이나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감내하면서까지 수입 쌀에 특별긴급관세를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쌀 관세화 후에도 정부와 농민 간 갈등이 끊이지 않고 예상되는 문제점들이 속출함에 따라 정부가 일방적인 쌀 시장개방 발표를 철회하고 정부-국회-농민 간 협의기구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쌀 시장개방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한데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며, 협의기구를 통한 의견수렴이 정부의 일방적 선언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장경호 부소장은 "협의기구를 통해 쌀 개방과 관련한 핵심적인 사항들을 검토·조율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요식행위가 아닌 실질적인 협의가 이뤄져야 하고 협의 내용들이 농민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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