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직야구장 내 새 중앙전광판. '가로 35m, 세로 15m' 규모다. 전광판의 뼈대는 1월27일~2월18일 공사가 이뤄졌고, 전광판 모듈 투입과 시운영 등의 절차는 지난 2월28일 처음 시작돼 오는 24일 끝난다. (사진=이준혁 기자)
[부산=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올해 프로야구 시범경기 일정표를 보면 롯데 자이언츠 홈경기는 2군 연습장이 자리잡은 김해 상동 연습장과 곧 개장하는 울산 야구장 등지에서 열린다. 홈 구장인 사직 야구장에선 올해 시범경기가 전혀 열리지 않는다.
롯데는 1986년부터 사직구장을 홈구장으로 써왔다. 사직구장 개장 이래 지난 18시즌에 걸쳐 사직구장에 어떤 시범경기도 전혀 배정하지 않은 경우는 올해 처음이다.
시범경기를 사직구장서 열지 못하는 이유는 경기가 없는 겨울에 시작한 공사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는 29일 오후 2시 열릴 프로야구 정규리그 사직 개막전은 차질없이 진행된다.
공사에 고난이도 기술이 쓰이거나 일정이 지연되는 형태는 아니다. 새로운 전광판과 각종 음향장비 설치에 위해 충분한 시범운영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뉴스토마토는 지난 6일과 16일, 모두 두 번에 걸쳐 사직구장을 찾아 공사 과정을 살피고 공사 현장 책임자와의 오랜 대담을 가졌다. 불펜을 바꾸고 펜스를 교체하는 등의 단순한 작업이 계속 이뤄지는 외곽도 적잖게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음향·영상 장비를 설치하고 운용할 공간은 전쟁터를 연상케 할 정도로 바쁜 모습이었다.
◇부산 사직야구장 내 새 중앙전광판. 전광판 제작사가 사전 구비한 기본 템플릿의 하나로, 현재 롯데 구단에 맞춘 '키스타임' 영상 제작이 별도 진행 중이다. 사진 촬영 당시 '광안대교' 장식물에는 전원을 켜지 않아서 육안에 보이지 않는다. (사진=이준혁 기자)
◇중앙전광판 - 미국산 최신 전광판으로 교체
이번 리모델링 공사에서 가장 주목할 사항은 단연 중앙 전광판 교체다. 대한민국의 야구장에 운영되는 전광판 중 최고가 될 만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일반 영상으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은 대전 한밭야구장 중앙 전광판 화질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화질의 차이에 민감한 영상을 방영할 경우, 화질 차이로 인한 느낌은 클 것이다. 전광판에 쓰이는 소자는 같지만 한밭구장이 가로 23m, 세로 8m로 184㎡인 반면 사직구장이 가로 35m, 세로 15m로 525㎡에 달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많이 쓰이던 국산 전광판과 비교하면 화질 차이는 훨씬 커진다. 기존 국산 전광판이 14비트 소자를 사용하는 반면 사직 전광판은 19비트 소자를 사용한다. 화질에 대한 계산 방법은 '8의 14제곱'(기존 국산)과 '8의 19제곱'(사직)이다. 8은 'RGB'의 3색(2 x 2 x 2)에서 비롯됐다. 즉 사직구장에 새로 설치되는 전광판이 기존 국산 전광판과 비교하면 무려 32768배나 화질 차이가 나게 된다. '32768'이란 숫자는 '8의 5제곱'에서 도출된 것이다.
아무튼 전광판 화질로서 당분간 사직을 앞설 야구장은 없을 것이다. 현재 리모델링 중인 수원과 신축 중인 대구는 어떤 전광판을 쓸지 확정된 바가 없다. 다만 뉴스토마토가 KT와 삼성 구단에 각각 취재한 바에 따르면 새롭게 짓는 구장의 전광판 성능 향상에 대한 관심은 높다.
지난 시즌까지 쓴 사직구장 중앙 전광판은 2001년 설치됐다. 13시즌을 썼지만 아무래도 오래된 시설이라, 최근 야구팬이 원하는 영상 방영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화려한 화질의 영상과 동영상 방영만 어렵다면 불편하긴 하겠지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형인 전광판이라 최신의 기능이 안 될 뿐이다.
하지만 사직 중앙 전광판은 경기 중에 전광판이 꺼지는 근본적 사고도 발생했고, 지난 시즌에는 습한 환경이 전광판 핵심부품의 일부에 고장을 내며 전광판의 하단 사용이 전혀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글자는 작아졌고, 자연스레 글씨체가 '어그러지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글자체가 이상하니 자연스레 언론이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발빠르게 움직였다. 망신살이 전국에 뻗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롯데 구단과 다수의 지역 체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전광판은 A/S(애프터서비스)도 불편했다. 현재의 전광판은 어지간한 고장은 원격으로 수리가 가능하지만, 기존 전광판은 무조건 수리 기사가 오가야만 했다. 게다가 기사는 경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어도 '입금'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서울서 오지 않았다. 롯데의 예비비로 먼저 고치고 시에 구상권을 청구해 돈을 받는 상황이 매번 계속 이어져왔다.
부산시가 야구계의 잇단 청원을 받아들여 전광판을 교체한 주요 이유에는 정상적인 사용이 불가능한 구형 노후 전광판과 잦았던 구동 사고가 있다.
◇부산 사직야구장 내 새 중앙전광판. (사진=이준혁 기자)
◇중앙 전광판 동영상, 화·려·하·다
이번 취재는 6일과 16일에 걸쳐 이뤄졌다. 전광판 설치가 많은 부분 마무리되가던 16일 방문 당시에 기자는 일부러 해가 지는 무렵을 노리고 들렀다. 해가 떠있을 당시의 전광판 촬영과 해가 진 이후의 전광판 촬영이 다 가능했기 때문이다.
새로 설치하는 전광판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30개 구단 중 28개 구단 홈구장에 전광판을 납품하는 미국 닥트로닉스(Daktronics)사 제품이다.
지역 야구계의 노력과 한국 시장 진출 확대를 생각하는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택에 38억5000만원이란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들였다. 38억5000억원은 설치비와 전광판 상단의 광안대교 모형을 더한 종합가(Full-Fare)에 해당된다.
지난 6일 취재 당시 뼈대의 틀만 갖춰져 있던 전광판은 16일 취재 당시에는 외부에 광안대교를 뜻하는 장식물이 장착됐고, 좌우로는 전광판 시설을 지탱할 폴대가 부착됐다. 내부적으로는 미국에서 수입해 통관 절차를 마친 전광판 내부 모듈이 투입됐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코 간단한 공사로 종결될 것이 아니다. 투입되는 부품도 많았고 기존 국산 제품과 비교하면 대략 20% 이상 가볍지만 무게가 '톤' 단위로서 손쉽게 다룰 성질은 아니었다.
이번 공사 담당자인 롯데 자이언츠 최규덕 매니저는 "무게를 보면 화면이 127톤, 양쪽 폴대가 각각 5톤, 광안대교 테마 장식물이 3톤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게 파손이 되지 않아야 한다. 결코 공사가 쉽게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닥트로닉스 신형 전광판을 수입하고 설치까지 맡은 배우성 키노톤코리아 부대표(상무)는 "전광판에 투입되는 모듈은 3895개에 달한다"며 "모듈은 모두 96개의 케비닛(가로 2m, 세로 1.5m)으로 정리된다. 기존 국산 제품처럼 모듈 하나하나 각각 넣는 방법보다는 훨씬 쉽지만 96개나 되니 이것도 나름의 일이다"라고 밝혔다.
전광판 설치에 관계된 모두의 고생이 투영된 덕택일까. 기자에게 최초로 보여준 영상은 대한민국 어느 구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게다가 실제로 방영될 영상은 롯데에 맞춰 특별 제작 중이다. 미국 닥트로니스는 영상 제작을 담당하는 디자이너 숫자만 200명이 넘는다. 이들이 롯데 구단이 방영할 영상의 기본 템플릿을 만들어 롯데에 제공한다. 29일 열리는 올해 첫 사직 경기가 벌써 기대되기 시작됐다.
◇16일 오후 부산 사직야구장 내 새 중앙전광판·음향장비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미 설치를 마친 장비를 시운전하고 새로운 각종 장비를 구장 곳곳에 설치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사진=이준혁 기자)
◇음향 장비 - 고출력 스피커 2대에서 54개 소출력 스피커로
음향 설비도 완전히 새로 탈바꿈한다. 초대형 고출력 스피커 2대에서 꼼꼼한 최신형 소출력 스피커 54대로 바뀌는 것이다.
초대형 스피커 운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두 대로 구장 전 구역을 책임지기 위해선 출력이 높아지고 소리는 상당히 커졌다. 소리가 울리게 느껴지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로 인해 관객의 경우 스피커 주변 관객의 귀는 따갑고, 스피커와 멀리 떨어진 관객은 음향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라운드 선수의 경우 경기 집중이 결코 쉽지 않았다. 구장 시설 관리에만 편리했을뿐 절대 다수에게는 불편했다.
이번 스피커 교체 공사를 통해 그동안의 단점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리 방향 조절이 가능한 미국 마이어 사의 스피커 54개가 구장 전역 구석구석 설치되기 때문이다. 국내 M모 멀티플렉스의 음향 특화 영화관 'M2관'에 쓰이는 스피커와 같다.
스피커 54개는 구장 스탠드 상단에 360도로 삥 둘러서 설치되며 소리는 그 아래로 깔끔하게 흐른다. 반면 그라운드 내를 향하는 스피커를 제외하면 대다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향은 그라운드에 대부분 들어가지 않는다. 관중과 선수 모두 환영할 만한 하다.
최규덕 매니저는 "선수는 선수대로 음향의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고 관중은 관중대로 응원을 열정적으로 즐길만한 최고의 환경이 조성된다"며 "더욱 선진적인 응원 문화를 선도하는 촉매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외 불펜 설치를 위해 익사이팅존의 구역 축소 공사를 진행 중인 사직야구장. (사진=이준혁 기자)
◇기타 - 펜스 교체·실외 불펜 설치·폴대 확대
전광판과 음향장비 외에도 사직 야구장의 개선 공사는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크게 느낄만한 공사건은 실외 불펜 설치와 폴대 늘이기다.
그동안 사직구장은 실내 불펜을 써왔다. 그러나 '팡팡'거리는 포수의 미트 소리가 울리며 투수의 정확한 구위 파악이 쉽지 않다는 불펜진의 지적이 많았다.
이에 롯데와 부산시가 불펜을 실외에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존의 실내 불펜은 실내 타격장 등과 병행해 계속 그대로 사용한다.
대신 익사이팅존이 양측 각각 절반(1·3루 각 약 140석)씩 사라지게 됐다. 불펜을 익사이팅존 공간을 활용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선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팬들의 이해가 필요해 보였다.
기존 16m던 야구장 폴대도 27m로 대폭 높아졌다. 70%가 높아진 것이다. 폴대를 돌아나가는 파울볼과 홈런볼의 판정시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외야수의 안전한 경기 진행를 위해 기존의 안전펜스 시설도 모두 바뀐다. 기존 두께와 재질은 물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기준을 훨씬 넘기는 두께와 최상의 재질로 쓴다.
당연히 충격 흡수도 더욱 강화되며 부상 위협은 한층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안전펜스 공사는 25일까지 모두 끝날 예정이다.
이밖에 스탠드 곳곳의 보수 공사가 진행된다. 어느새 29년차 구장인만큼 구장 곳곳 콘크리트가 파이고 도색이 뜯어지는 등의 흉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 사직야구장 입구. (사진=이준혁 기자)
사직구장은 국내 최고의 인기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가 홈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하지만 2만5000석 규모 대형 야구장이라는 외형과는 달리 속은 서서히 노후화 돼 갔다. 롯데와 부산시가 소규모 보수를 진행한 것은 잘한 결정임과 동시에 동시에 당연한 조치였다.
많은 야구 팬들에게 '세계 최대 노래방'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응원 문화로 세계의 많은 주목을 받는 사직야구장. 이번 전광판과 음향 공사가 활기찬 응원 문화와 선수 경기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기원한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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