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조승희 기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위조' 사건과 관련해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최종적으로 어떤 범죄 혐의를 적용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간첩증거 위조 의혹' 진상수사팀(팀장 윤갑근 검사장)은 국정원 압수수색 영장과 김씨 등에 대한 체포영장에 혐의를 형법상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통합진보당 등은 관련 국정원 직원과 수사 검사 등을 고소·고발하면서 국가보안법상 무고·날조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혐의가 엇갈리고 있다.
◇간첩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유우성씨. 이 재판에 검찰이 제출한 유씨의 중국-북한간 출입경기록 등 문건에 대해 중국영사관은 사실조회 회신을 통해 '위조됐다'고 밝혔다. ⓒNews1
두 혐의는 우선 법정 형량에서 큰 차이가 있다.
형법은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죄에 대해 "권리·의무 또는 사실증명에 관한 타인의 문서 또는 도화를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보법 12조1항은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해 무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한 자는 그 각 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이 법의 죄'는 형사처분을 받게 될 혐의를 말하며 이번 사건에서는 '간첩죄'다.
2항은 "범죄수사 또는 정보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이를 보조하는 자 또는 이를 지휘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해 1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제1항의 형과 같다"면서 "법정형의 최저가 2년 미만일 때에는 이를 2년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소 징역 2년 이상을 선고하도록 해 엄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간첩사건 피고인인 유씨에게 적용된 구체적인 혐의는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등이다.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지령을 받거나 받기 위해 또는 그 목적수행을 협의하거나 협의하기 위해 잠입하거나 탈출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7월5일 유씨에 대한 1심 결심 공판에서 이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구형했다.
유씨에게 국보법이 적용되면 검찰이 구형한 형이 문건 위조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국정원 직원 등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게 국보법 2항이 적용된다는 게 천주교인권위 등의 주장이다.
◇진상조사팀을 수사팀으로 전환한 지 사흘만인 지난 7일 검찰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했다. ⓒNews1
물론 이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국정원 직원 등이 유씨가 간첩임을 입증하기 위해 출입경기록 등 문서를 위조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로 확정이 돼야 한다.
천주교인권위 등의 주장은 국정원측이 김씨 등을 통해 관련문서를 위조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수사팀이 국보법을 주저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검찰은 아직 문서가 위조됐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형사사법공조로 중국 당국에서 공신력 있는 문건이나 증거물을 보내고 이를 검찰 제출문건, 변호인 제출문건과 비교해 진본과 위조본을 가리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로 국정원이 검찰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문건은 위조본이라는 것이 잠정적으로 확인된 상황이다.
이미 '협조자' 김모씨를 비롯해, 이인철 주중 선양영사관 부영사, 김씨의 부탁으로 자술서를 써 국정원에 제출한 임모씨 등의 진술에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김씨는 자살시도 전 작성한 유서를 통해 국정원측 문건은 위조본이고 국정원이 이를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를 어제(12일) 체포해 이틀째 조사 중이며 곧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입' 윤갑근 증거조작 의혹 수사팀장. ⓒNews1
검찰이 국보법 위반 혐의 적용을 꺼리는 또하나의 이유는 유씨 간첩사건 공판 검사들 때문이다.
유씨측 변호인단 등에 따르면 공판검사들은 1심에서 유씨가 국보법 위반(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자 항소한 뒤 ▲유씨에 대한 '출입경기록 조회결과' ▲'출입경기록조회 발급확인서' ▲변호인측이 발급받은 정황설명서에 대한 회신 등 3개 문건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앞의 두 건은 화룡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이고 세번째 문건은 삼합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에서 발급된 것으로 돼있다. 3건 모두 유씨측이 제시한 문건을 반박하는 문건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1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 문건들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연길주 공안국으로 공문을 보내서 그 회신으로 받은 것이다. 정식 경로를 통해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조 의혹과 함께 국정원이 개입됐다는 정황이 진상조사팀을 통해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법정에서 유씨측 변호인단은 최근 기일인 지난달 28일 이 점을 집중적으로 확인하며 검찰을 압박했다.
공판 검사들은 "기존과 같이 연길주 공안국으로 공문을 보내 받은 회신문건들이 맞냐"는 변호인단 질문에 "우리는 국가간 정보교류를 통해서 받았다고 얘기했을 뿐 공문을 통해 받았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답변했다.
공판 검사들은 "다만 진상조사단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기존의 국가간 정보교류를 통해서 받았다는 것만 확인해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공판 검사들의 이 같은 태도 변화로 검찰도 위조 문건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 검사들은 최근 진상수사팀의 조사를 받았으나 구체적인 답변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공판 검사들이 위조문건임을 사전에 알았다면 검찰로서도 책임이 매우 크다. 공판 전 증거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비판 외에도 국보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검찰로서는 이번 사건에서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정원과 함께 국보법을 적용받는 '참사'는 어떻게든 피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피한다면 '제식구 감싸기'라는 껄끄러운 비판과 '검찰개혁' 주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국정원을 조준해 수사에 가속도를 내고는 있지만 검찰의 머릿속은 전례없이 복잡한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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