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3조원 국부 및 기술유출을 막아주십시오. 지금까지 5년간 한국 기술자들에게 훈련을 받은 약 3만명의 현지 근로자 및 특수조선·해양공법 유출로 단기간내 한국 조선산업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총 29억달러가 투자된 세계최대 조선소인 STX다롄 조선소 재가동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국내 채권단과 중국 채권단이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STX다롄 조선소의 청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조선소 가동 중단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지 한국 협력업체들 대표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STX다롄 채권사협의회는 12일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서 매각과 청산은 3조원 국부유출의 지름길"이라며 STX다롄 조선소 재가동을 호소했다.
STX다롄 채권사협의회는 50여개의 STX다롄 조선소 협력업체로 구성돼 있으며, STX 측으로부터 1000억원에 달하는 납품대금 및 인건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등 경영난이 가중돼 왔다.
◇STX다롄 채권사협의회는 12일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STX다롄 조선소 청산에 반대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실시했다.(사진=최승근 기자)
지난 2007년 총 29억달러가 투자된 STX다롄 조선소는 연간 70척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다. 완공 이후 4년 동안 70여척을 선주사에 인도하며 중국 내 조선소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그룹인 STX그룹의 재무구조가 악화되면서 지난 4월3일 문을 닫고 가동이 무기한 중단됐다. 당시 생산 중이던 15척의 선박은 도크에 그대로 방치됐고, 선박 기자재를 납품하던 협력업체 대표들은 중국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해 중국 공안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후 산업은행 등 국내 채권단이 처분을 위해 중국 채권단과 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는 등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은행 측은 11억2000만달러에 달하는 중국 은행 여신을 모두 상환하고 재가동을 시작하면 그때 다시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협의회 일각에서는 중국의 이 같은 무리한 요구가 한국 채권은행들과 STX그룹이 STX다롄 조선소를 중국에 두고 떠나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중국 정부 주도로 조선업에 대한 신규투자가 제한된 가운데 중국 국영조선소가 옮겨갈 장소로 STX다롄 조선소를 탐내고 있다는 것.
중국 대련조선소가 대련항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처지에 놓였는데 신규투자가 제한돼 새로 지을 수 없게 되면서 STX다롄 조선소를 이전 장소로 낙점했다는 것이다. 부지가 워낙 넓고, 생산 설비도 갖추고 있는 등 중국 정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최적의 입지요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STX다롄 조선소가 갚아야 하는 금액은 14억달러 규모다. 이중 11억2000만달러는 중국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으로, 7억달러는 STX그룹 각 계열사들이 지급 보증을 섰다. 한국 은행들의 여신은 총 3억달러 규모다.
협의회 측은 “STX다롄 조선소의 현재 청산가치는 제로인 상태”라며 “이 상황에서 청산할 경우 조선소를 중국 정부에 헌납하는 것은 물론 STX그룹이 지급보증을 선 7억달러도 결국은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70여척의 수주 물량이 남아있는 만큼 조선소의 일부분이라도 재가동을 해 정상화시키고 그 이후에 제값을 받고 매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협의회 측에 따르면 70여척의 수주잔고 중 절반인 35척은 정상 금액으로 수주한 물량이라 제때에 납품만 하면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당분간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다. 나머지 35척은 저가 수주로 정상금액의 15% 가량 싸게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 해도 현재로서는 STX다롄 조선소의 재가동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지난 4월 가동을 중단한 지 8개월이 지나면서 도크에 생산 중이던 선박 15척을 처리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일터를 떠난 선박 기술자들을 모으는 것도 문제다. 이미 한국 조선소와 중국 조선소로 일터를 옮긴 인력이 상당수라 최소한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STX조선해양 측도 현재로서는 재가동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은 “STX다롄과 STX조선해양의 자금이 바닥난 상태라 지원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 은행들과 국내 채권단의 움직임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STX다롄 조선소에 지급 보증을 선 STX그룹 계열사 전부가 자율협약 또는 법정관리 중인 관계로 이 부분도 채권단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손놓고 채권단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와 총리실을 잇달아 방문해 STX다롄 협력업체들에 대한 긴급 지원책 마련을 요청했다. 13일에는 국회를 방문해 여야 지도부와 만나 지원책 마련을 촉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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