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지난 2년간 첨예한 공방을 이어온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분쟁이 이번 주 일단락될 전망이다. 다만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수입금지 조치할 품목들이 시장에서는 이미 유통되지 않는 구형 모델들이라 양사의 특허 공방 결과가 실질적인 이득 없는 자존심 싸움으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ITC는 내달 1일(현지시간) 애플이 요청한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미국 수입 금지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릴 예정이다. 또 8월 5일 이전에는 삼성이 요청한 아이폰의 미국 수입금지 조치가 시행된다. 결정은 최종 승인권자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손으로 넘어갔다.
역사적으로 ITC의 권고안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지난 1987년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오바마 대통령이 수입금지 조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다만 미국 4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버라이즌의 랜들 밀히 부회장이 최근 "ITC의 수입금지 권고로 미국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개입을 촉구하는 한편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도 수입금지 조치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상황이라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005930)는 이번 최종 판결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정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삼성전자에게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즉각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통령이 양사의 주장을 인정한 권고안을 모두 수용한다 해도 삼성전자가 미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되는 제품은 갤럭시S, 갤럭시S2 등이며, 애플은 아이폰3G, 아이폰3GS, 아이폰4, 아이패드3G, 아이패드2 등 구형 제품 5종이다. 소비 수요가 그리 크지 않은 만큼 기존에 확보된 재고물량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한 수준이다.
◇미국 ITC에 의해 수입금지 조치가 임박한 삼성전자 갤럭시S2(왼쪽)와 애플의 아이폰3G.(사진제공=각사 홈페이지)
이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이 사실상 '이해'라는 의미를 상실하고 '명분싸움'으로 변질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 최근 대형 제조업체 간 스마트폰 관련 소송을 분석해 보면, 법적 분쟁을 유발하는 특허 내용이 최첨단의 기술을 다루고 있는 만큼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되는 반면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특허 침해에 대한 법원의 제재가 갈수록 효력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가령 애플이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S4에 대해 특허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기존 소송과 별도의 재판을 청구해야 하는데 이 또한 최종 판결까지는 2년여의 기간이 소모된다. 최근 어빙 윌리엄스 ITC 위원장은 "기간을 12~16개월로 단축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현실적 이유를 들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스마트폰 판매 채널인 이동통신업계 또한 비슷한 입장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AT&T, 버라이즌 등 주요 통신사에는 이미 기존 시장에서 소화되지 않은 아이폰 재고물량이 잔뜩 쌓여있다"며 "수입 자체가 불필요한 상황에서 정부의 수입금지 조치가 시장에 미칠 영향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최근 미국에서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등장한 '제조업 부흥'과 관련해 대형 업체간 '특허소송'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강하다. 새로운 기업의 탄생과 이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가 억제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특허괴물'에 대해 이례적으로 날선 비판을 늘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또 최근 구글을 중심으로 힘을 받고 있는 '유니파이드페이턴트'와 국내의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등 특허괴물의 공격을 조기에 알려주고 방어해주는 시스템과 업체 간 크로스 라이선싱의 활성화는 특허공세를 무기로 삼아온 애플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두 회사가 법정 공방에 아무 의미 없는 지출을 한 것은 아니다. 법조계에서는 양사의 날선 특허공방이 사실상 그들만의 '특허 카르텔'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 신기술을 적용하려는 기업들이나 스마트폰 시장에 새로이 진입하려는 업체들에게는 일종의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카고 연방법원 판사인 리처드 포스너는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현 특허제도는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기보다는 침해자에게 징벌을 내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며 "삼성과 애플의 소송에서 유죄를 받은 곳은 그동안 특허권 부여를 남발해온 미국 특허청"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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