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정부가 세수 확보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면서 정기예금 기관인 은행에서 자금 인출이 확인되고 있다. 아직까지 시장의 큰 충격을 줄만한 자금 흐름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은행 예금에서 빠져나간 돈은 금시장, 증시 등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흘러들고 있다.
◇정기예금 올 들어 6조 증발..고액예금 크게 줄어
지난 연말부터 은행 정기예금에서는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갔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은행 정기예금 잔액은 552조2746억원으로 1월말 558조2907억원에서 6조161억원이 감소했다.
지난 2월과 3월 각각 2조5000억원씩 줄어든 데 이어 석달 연속 감소세다.
2~3월에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이 강화되면서 5조원가량이 정기예금에서 이탈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 은행에서는 개인 뭉칫돈이 새나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의 5억원 이상인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19조2000억원에서 3월에는 18조9000억원으로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5억원 이상 예금 보유자들이 새로 과세 대상이 되면서 고액 자산가들이 미리부터 예금을 인출하거나 예금을 다른 절세형 상품으로 분산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신한은행 PWM센터 관계자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절세형 상품으로 갈아탄 것으로 보인다"며 "자금 거래와 소득이 노출될까 미리 인출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꽁꽁 숨은 5만원권..지하경제 양성화 때문?
5만원권 유통 속도도 급속도로 느려지고 있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으로 5만원권 현금으로 인출해놓는 고객이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만원권의 발행액은 5조7593억원이었지만 다시 한은으로 돌아온 환수액은 3조3735억원에 그쳤다.
환수율로 계산하면 58.6%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86.7%)나 1분기(71.6%)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지난 2009년 6월 처음 발행된 5만원권이 시중에 돌지 않는 이유로는 거액의 자산가 등에게 '검은 돈'으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 다수의 의견이다. 이동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나 자금을 숨기거나 보관해놓기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5만원권 100장을 묶은 스무다발이면 1억원이 되는데, 무게는 2kg, 높이는 22cm 남짓이다. 하지만 1만원권으로 똑같은 1억원을 만들려고 무게가 무려 11kg, 높이는 1.1m나 된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5만원권을 많이 찍어내지만 대부분이 탈세 목적으로 개인 금고에 잠들어 있다"면서 "5만원권으로 15억원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 금고 판매량이 최근 20% 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은행 발권기획팀 관계자도 5만원권 회수율 급감에 대해 "전체적으로 개인의 현금보유성향이 높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고액권이 선호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골드바 상품이 조세회피 상품?..은행들 '난처'
예금에서 빠져나간 돈은 금 시장, 증시 등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특히 당국의 과세 칼날을 피해 금값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금·은 등의 상품을 찾는 자산가들이 급속히 늘고 있다.
시중은행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골드바 판매가 급증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골드바가 조세회피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해 최근에는 판매량 공개도 거부하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 국민은행에서는 영업점과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통해 1kg 골드바와 100g, 10g의 미니 골드바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골드바 판매를 시작한 국민은행은 한 달여 동안 약 350kg(약 200억원) 이상을 판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부터 골드바를 판매하는 신한은행도 월 평균 판매량이 지난해 200kg 수준에서 올해는 500kg 수준으로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지하경제양성화 추진 시기와 겹치면서 골드바가 조세회피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어 당황스럽다"면서 "글로벌 금값은 하락세인데 금 판매액이 늘고 있는, 이상현상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골드바가 불티나게 팔려 구입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한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며 "지점당 보유한 골드바가 많지 않아 기다려야했던 게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드바 열풍은 고소득자들의 최근 금융종합소득과세 기준의 변화가 첫 번째 이유로 지목된다. 새로운 과세 기준이 4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대폭 강화되면서 매매 차익에 세금이 붙지 않는 골드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
아울러 앞으로 국세청이 보유할 수 있는 2000만원 이상 현금 거래 정보가 대폭 확대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정보분석원에 통보해야하는 현금거래 기준이 낮아지기 전에 골드바 등 실물투자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