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고재인기자] 정부는 구멍날 수 있는 세수 확보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풀어야 할 하나의 숙제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지하경제 양성화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경우 경기위축으로 실물경기가 더욱 악화돼 장기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연착륙을 위해 지하경제와 금융시장이 각각 처한 현실과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5년간 28조5000억원 규모의 세금을 걷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년간 평균 6조원으로 박근혜 대통령 임기동안인 5년간 30조원 규모의 세금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관세청도 올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지난해 보다 1조4000억원을 추가 증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부는 정확한 목표를 세우며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주요 추진 방안으로 현금영수증, 전자세금계산서의 의무발급 확대, 역외탈세 방지, 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보완 등의 방안을 내놨다.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 초기여서 시장의 반응은 관망하는 분위기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금융시장 자금의 흐름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시장의 큰 충격을 줄만한 변화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금융시장은 아직까지 실질적인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고 보고 향후 정부의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다.
◇금융시장 돈맥경화로 실물경제 위축 우려
금융당국은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통한 건전한 금융거래 및 신용질서 확립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외부감사 강화, 신용 및 직불카드 거래의 투명성 강화 등을 통한 은닉소득의 양성화, 금융정보분석원(FIU) 제도개선을 통해 자금세탁관련 금융거래 포착능력 강화, 불공정 증권거래, 불법사금융, 보험사기와 보이스피싱 불법 차명거래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논의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은 관계기관이 협의하면서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금융정책 방향>
(자료:한국금융연구원)
금융시장에서 지하경제가 양성화됨에 따라 시장에 돈이 돌지 않는 부작용을 우려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FIU 금융거래 정보가 국세청으로 전달될 경우 고액현금거래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현금이 돌지 않고 개인금고 등으로 숨어들 수 있다.
국세청은 대부분의 금융거래 정보를 원하지만 금융당국은 이같은 우려 때문에 탈세혐의가 있다고 문제가 되는 것에 대해서만 정보를 제공하고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6월 국회 처리 예정인 FIU법도 국세청이 탈세혐의를 제시하고 FIU가 이를 승인하는 경우에 한해 의심거래정보(STR)와 2000만원 이상의 고액현금거래(CTR)를 국세청이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 다른 관계자는 "모든 정보가 국세청에 공개될 경우 선량한 사람들도 인권을 침해당할 우려가 있으며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사람도 부담을 느껴 금융시장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문제의식을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다.
금융권도 경기위축을 우려해 관련법 개정에 시장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우선 관련법 제정이나 개정할 때 관련부처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이 참석하는 태스크포스(TF)가 필요하다"며 "고객과 접점지역에 있는 금융기관에서 의견을 제시해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실명제 도입 때와 같은 충격파 피해야
금융권에서 우려하는 것은 금융실명제의 도입 과정에서 겪었던 충격파를 지하경제 양성화에서 다시 겪는 것이다.
지난 1982년 처음 논의됐던 금융실명제는 당시 경제상황과 반대세력이 만만치 않아 도입이 무산됐다. 이후에도 금융시장 붕괴 등의 이유를 들어 번번이 무산됐다.
하지만 1993년 보안을 최대한 유지해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에 대한 대국민 긴급 발표를 하게 됨으로써 금융실명제는 예고도 없이 시작되면서 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금융실명제법이 그해 갑작스럽게 도입되자 시장은 아연실색한 것.
주식시장은 출렁거렸고, 금매입이 증가했으며 기업을 중심으로 은행 예금의 증가폭은 감소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금융실명제가 예고도 없이 바로 실시됐을 때 시장의 충격은 엄청났다"며 "실물경제까지 엮이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현재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지하경제 양성화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으로 금융실명제법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향후 정부가 이같은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문가는 "금융실명제라고 해도 차명까지 일부 허용하고 있다"며 "시간을 두고 허용해줬으며 15년 이상 흐른 지금 차명거래를 불법화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법화가 용인되다시피한 차명거래를 완벽하게 없애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부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강도는 지금 내놓은 정부의 대책 정도에서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지금 같은 경제상황에 강력하게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할 경우 그 파장과 그로 인해 효과적인 세수확보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 다른 전문가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시장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는데 아직까지 시장에서 의미있는 수치가 나오고 있지 않다"며 "은행예금과 고액현금거래가 줄어드는 등 데이터가 나와야 하는데 큰 변화는 없다"고 지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지하경제 양성화가 추진돼야 하겠지만 서민금융 부문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속도조절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소상공인에 대한 소득세 과표도 투명하게 노출시킬 경우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아 서민금융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것.
국세청도 이같은 부분에 공감을 하고 서민금융 부문에 대해 예외를 두는 방안을 조율중이다.
금융당국 또 다른 관계자는 "서민금융 부분까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이 파급될 경우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만큼 속도조절과 정교한 정책실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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