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삼성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샌드위치론'에 상당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07년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라며 던졌던 위기 의식이 6년이 지난 올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10일 "한 동안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 등에 뒤쳐진 것으로 치부됐던 일본 굴지의 전자기업들이 최근 CES 2013에서 건재함을 나타내며 다시 한국 기업들을 추격해오는 양상"이라며 이 같은 불안감을 뒷받침했다.
물론 아직 삼성전자와 일본 제조업체 간 어느 정도의 기술 격차가 있지만, 삼성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일본 기업들의 반격이 삼성측이 예상한 시나리오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CES 2012에서 이건희 회장이 "일본은 힘이 좀 빠졌고 중국은 한국을 쫓아오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한 지 불과 1년 만에 추격을 다시 허용하게 된 셈이다. 이건희 회장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 소니는 CES 2013에서 OLED TV의 화질을 4배 이상 끌어올린 '4K OLED TV'를 공개하며 '왕좌'를 되찾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다. 샤프 또한 삼성, LG 등 우리나라가 주력으로 삼고 있는 4K보다 두 배 이상 해상도가 뛰어난 8K TV 제품을 내놓으며 녹슬지 않은 기술력을 과시했다.
중국 또한 하이신과 TCL이 110인치 4K TV를 선보이면서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을 비롯해 하이얼과 청홍 등 다른 중국 업체들도 85인치 UHD TV를 전시하며 기술 경쟁에 합세했다. 중국이 빠르게 기술 격차를 줄이면서 세계 TV시장을 선도하는 우리나라
턱밑까지 쫓아왔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로 이번 CES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초대형 TV, 곡선형 OLED TV 등을 선보이며 대대적인 기술력 과시에 나선 것도 후발 업체들의 추격에 대한 위기 의식의 표현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국내 제조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TV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주력 모델이 40인치 TV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CES 2013에서 나온 놀라운 제품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제품은 소니의 4K TV 정도"라며 "삼성과 LG의 경쟁은 시장성 기준으로 봤을때 크게 의미있는 경쟁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2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은 힘이 좀 빠졌고 중국은 한국을 쫓아오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고 밝혔다.
또 삼성의 위기감은 단순히 제품만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TV 등 첨단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데 가장 일조한 것은 제품 경쟁력 이외에도 '가격 경쟁력'의 역할이 컸다. 이는 삼성 내 주요 관계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한국에 맹주 위치를 내주게 된 일본 전자산업계의 인식도 비슷하다. 소니 한국법인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을 평가하는 지표로 빠짐없이 언급되는 부분이 바로 '가격 경쟁력'"이라며 "물론 삼성, LG가 기술 부문에서도 글로벌 리더십을 구축하고는 있지만 핵심적인 성장 동력이 가격이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아주협력팀장은 “의사결정속도가 느리다는 문제도 있지만 일본제조사의 경우 그동안 정부지원도 제한돼 왔다는 점과 엔화 강세가 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고 지적했다. 즉 삼성을 예로 들면, '패스트 팔로워'로 상징되는 특유의 강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 부분은 환율과 관련한 정부의 적극적인 수출 장려 정책이 크다는 얘기다.
엔고시대가 시작된 시점부터 한국 수출기업들의 전성기가 시작됐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엔화에 대한 대대적인 절상 조치가 이뤄졌던 지난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한국 경제가 부흥기에 접어든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조만간 이같은 엔고시대가 종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는 취임 전부터 '윤전기를 돌려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 내겠다'는 공언과 함께 최근 경기부양을 위해 10조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함은 물론, 제조업에 1조엔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일본의 공격적 조치는 주요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삼성전자 등의 수출 기업들에겐 큰 위협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이전 정부처럼 고환율 정책을 지속해줬으면 좋겠지만 기업 간 양극화에 대한 비판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들은 환율을 기반으로 한 호황이 끝나는 것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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