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공화국①)시작하기도 전에 좌절..'개천의 용'은 옛 말
"부모 학력 높을수록 전문직일수록 자녀 명문대 진학률 높아"
부에 따른 학력·급여·기회 등급화 '심각'
거주지가 경제 지표..서울 내에서도 양극화
2012-11-21 17:20:43 2012-11-29 12:16:08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여의도 한복판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의정부역 흉기난동, 울산 슈퍼마켓 칼부림 사건. 최근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묻지마 범죄'다.
 
묻지마 범죄는 아무 이유 없이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오된 사람들의 자포자기형 분노 범죄다.
 
자신의 경제적 조건이 하락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경제적 어려움, 고용 불안, 잦은 실업, 사회적 차별 등 불안정한 사회의 구조적 영향 속에 패자부활조차 불가능한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스토마토는 묻지마 범죄를 무조건 범죄로 여기기보다는 이를 양산하게 하는 사회적·경제적 근본적 원인을 파헤치고, 사회적으로 넘쳐나는 '화'를 유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나처럼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오는 청년들이 나올 수 없다면 미래가 없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 연설문을 독회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이라고 한다. 
 
이제는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옛시절에 대한 얘기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에서부터 차별이 시작되고 있다. 예전보다 계층 사이의 벽이 높아진 탓이다.
 
이 대통령의 바람과는 달리 애초에 출발점은 정해져 있다는 패배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있는 집 자식'들이 받는 사교육 수준은 혀를 내두른다. 실제 부모의 학력과 직업·소득·거주지로 결정되는 교육 환경이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막역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부환경도 경쟁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월 100만원에 육박하는 영어유치원에서 사립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로 가면, 이 때부터 사교육의 집중 포화가 시작된다. 특목고 입학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포석'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스펙 쌓기'를 위한 사교육은 이어진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해 상반기 대학생과 구직자 87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는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실제 부모의 직업이 전문직·사무직이고 학력이 높을수록, 월평균 가구소득이 많을수록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한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 한다.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월평균 가구소득이 110만원 이하인 학생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33.8%다. 반면 가구소득이 490만원 이상에 속하는 학생의 진학률은 74.5%로 두 배 이상 높았다.
  
어느샌가 '어디 사냐'는 질문이 경제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집값이 급등하기 시작하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나머지 지역은 '비(非)강남'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됐다. 실제 교육 환경 격차가 서울과 지방은 물론이고 서울 내에서도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진학률을 보면 30위권 대학은 서울이 12.6%에 인해 반해 중소도시와 지방은 7%대에 그쳤다. 특히 9대 주요대학 및 의대진학률은 서울이 6.0%인 반면 중소도시와 지방은 1%대에 그쳤다.
 
서울시 내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월 평균 소득 400만~500만원  가정의 상위 대학 졸업자 비중을 조사한 결과, 교육환경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강남구·광진구·서초구가 각각 30% 이상의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동대문구·용산구·중랑구·영등포구 등은 전체 학생 중 상위대학 졸업자가 10%에도 못 미쳤다.
 
지난 2000년 헌법재판소가 '과외 금지 위헌'을 판정한 후 사교육을 부채질하는 꼴이 됐다. 이 때부터 계층 간 교육 격차가 심화되면서 사회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신 대학은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평생 꼬리표가 돼 따라 다닌다. 열린 채용 등을 통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명문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복지와 임금이 좋은 대기업에 입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 평생 그 상태로 옷을 입고 살아야한다는 패배감이 팽배한 현실이다.
 
경남 창원에 사는 박 모(29세) 씨는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대를 나왔는데, 그 때문인지 서울에서의 취업에 여러번 고배를 마셨다"며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저축이 노후를 보장한다는 믿음도 깨졌다. 제일기획이 최근 3년 동안 13~59세 남녀 3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성실하게 저축해도 원하는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소비자는 56%로 절반이 넘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조모(45세)는 "넉넉치 않은 가정환경 탓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그럼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분명이 있다"며 "불가능한 꿈을 향해 아둥바둥 사느니 현 상황에 만족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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