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아름기자] 곡물가격 급등세가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세계적인 에그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은 곡물수급위기에 대비한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국간간 공조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한국 정부도 백화점식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단기적 전략에 치우쳐 있고 그나마 진행중인 중 중장기 대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5일 정부 등에 따르면 곡물가격은 지난 6월 중순 이후 뛰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요동치고 있다.
지난 6월15일부터 7월20일까지 밀 가격은 46.6%, 옥수수 가격은 36%, 대두 가격은 30% 급등했다. 이번달 들어서도 증가추세가 이어져 2주 전 옥수수 12월물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8.49달러를 기록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번 곡물파동은 미국, 러시아 등 주요 곡물 수출국의 가뭄 사태로 선물시장에서 농산물에 대한 투기적 자금 유입이 확대되면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주요 생산국의 기후 여건이 단기간내 호전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만큼, 당분간 공급충격에 따른 곡물가격의 추세적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다.
곡물 생산량과 재고량도 급감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USDA)의 8월 곡물 수급 보고서에 따르면 8월 옥수수 생산량은 지난달에 비해 6.2% 줄어들 전망이다. 콩과 밀의 생상량은 각각 2.5%, 0.4%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8월 전세계 곡물 재고율 전망은 18.8%로 지난달 예상치 대비 0.5%포인트 하락했다. 밀의 재고율은 25.9%로 지난당보다 0.9%포인트 떨어져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옥수수와 대두의 재고율은 각각 14.3%, 20.8%로 전월 전망치 대비 0.6%포인트, 0.4%포인트 내려갔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세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주요20개국(G20)은 곡물 상승이 세계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지난해 열린 칸 정상회의에서는 ▲G20 농업생산성 세미나 개최 ▲관련 연구·투자 확대 ▲‘농산물정보시스템(AMIS)’ 구축 ▲신속대응포럼(RRF) 운영 등을 내용으로 하는 '농업과 식량가격 변동성에 대한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오는 27일에는 AMIS 의장국인 프랑스와 차기 의장국인 미국이 화상회의를 갖고 곡물 값 폭등을 저지하기 위한 역내 포럼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곡물자급률이 2010년 기준 26.7%인 세계5위 곡물수입국이다. 옥수수, 밀, 콩의 자급률은 각각 0.8%, 0.8%, 8.7%에 불과해 수입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곡물가격 급등에 취약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G20 정상들에게 서한을 보내 국제공조를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농업생산 증진과 생산성 향상, 각국의 바이오연료 정책 수정, 식량 수출제한 조치 억제ㆍ인도적 목적의 식량구매에 대한 수출제한 폐지 등을 제안했다.
관련 부처에서도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른바 '한방'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 동안 정부는 곡물가 급등 대응 방안으로 주요 곡물에 대해 할당관세 폐지, 농산물 가격 안정기금·수입물량 확대, 주요 농산물 유통물량 확보 등을 내놨다. 대부분 단기적인 공급확보와 물가안정이 중심으로, 식량 자급률 제고와 곡물 수급 안정을을 위한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제 곡물가격이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폭등세가 나타나는 등 불안전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책들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출자사업은 미국 등에 산지 엘리베이터(곡물을 저장·가공·운송하는 현지 시설)의 인수·건설·지분참여 등을 통해 국제곡물유통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추진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국제곡물유통망 투자를 늘리는 목표를 세우고, 2011년 사업 예산 200억원을 aT에 교부했다. 그 중 15.4%인 30억9100만원이 이미 집행됐지만 계획 수립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제곡물 수급불안에 대비해 만든 국가곡물조달시스템 역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정부는 미국, 브라질 등 해외 주요 농산물 산지에서 직접 곡물자원을 매입해 식량을 국내에 안정적으로 조달한다는 취지로 예산 642억원을 투자했지만 국가곡물조달시스템을 통해 들어온 곡물은 현재까지 콩 1만1000t이 전부다.
정부는 식량자급률을 오는 2015년까지 55%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지난 20일 밀 생산량을 올해 4만2000t에서 내년에 7만5000t까지 늘리고 주정용 원료로 국산 밀 3만t을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밀 생산량을 7만5000t까지 늘린다고 해도 자급률은 3.3%에 불과하며 지금 밀 생산에 들어가면 내년 여름에나 수확이 가능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식량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중장기적인 수급과 자급 목표를 설정하고, 장기적인 식량정책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종자 갱신 등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수요창출, 직불제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보전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재영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차장은 "정부의 농산물 대책이 단기적 처방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라며 "2010년 쌀이 공급과잉 상태에 빠지자 논에 벼 대신 다른 소득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다가 올해는 보조금 대상 면적을 4만㏊에서 5000㏊로 줄이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량안보를 제고하고 농민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점에서 식량자급률을 높여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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