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방송의 디지털 환경 구축, 스마트미디어 부상, 계층간 불거지는 미디어복지 격차, 무엇보다 차기 정부 출범이 머지않아 예견된 상황에서 방송정책의 지향점은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학계와 시민사회는 방송의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미디어미래연구소가 28일 주최한 ‘차기정부 방송통신정책포럼’에서 패널들은 보수ㆍ진보 가릴 것 없이 이명박정부의 방송정책에 낙제점을 주며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현 정부의 실책으로 ‘지나친 정치적 개입’을 문제로 꼽으며 방송과 정치는 멀찍이 떨어뜨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모든 방송정책 멈춰버린 4년..공공영역은 황무지로 변해”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정책위원은 “이 정부 들어 방송정책 모든 게 멈춰버린 게 아닌가 하는 게 솔직한 진단”이라며 정치 도구화 된 방송정책, 형평에 어긋났던 종편 지원책, 공영방송사에 투하된 낙하산 사장과 편파ㆍ불공정 보도, 눈에 띄는 시사프로그램 실종, 사업자간 재전송ㆍ중계권ㆍ주파수 분쟁, 최소가구만 대상으로 한 디지털전환 등을 하나씩 문제로 꼽았다.
강 위원은 “이 안에서 시비를 가르는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그것이 소모적으로 이어지며 빠른 매체 환경 변화 가운데 지혜를 모을 여력도 없었고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항제 부산대 교수(신문방송학)도 현 정부가 추진한 세 가지 큰 정책으로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 개편해 융합서비스를 구현하고,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을 출범시켜 시장을 확장하며 공영방송사의 거버넌스를 재조직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이 모두 “낙제점 이상은 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재영 충남대 교수(언론정보학)는 방송의 공공영역이 무너지고 황무지가 된 단적인 예가 방송사 파업 현황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파업이 이렇게 오래 가는 것도 문제지만, 시민들이 방송사 파업에도 더 이상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가장 우려할 부분”이라며 “지상파방송은 사회의 공공성을 유지하는 플랫폼인데 존재감이 약해진 것 자체가 사회 위기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MB정부 이념ㆍ철학? 실상 없어..CEO식 실용주의 ‘정치과잉’ 초래”
보수성향 학자도 비판엔 예외가 없었다. 하지만 진단은 조금 달랐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이명박정부의 방송정책은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가장 큰 문제는 이념과 철학이 없었다는 것이고, 전혀 없었다기보다 그 자리를 CEO식 실용주의가 차지한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CEO식 실용주의 특징으로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불신을 꼽으면서 “이 같은 반정치, 반관료주의가 되레 ‘정치과잉’을 불러서 크건 작건 정책마다 혼란을 불렀다”고 설명했다.
성동규 중앙대 교수(신문방송대학원)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공영중심에서 시장중심으로, 단일 플랫폼에서 융합으로, 라이브 중심에서 VoD로 새로운 방송서비스가 속속 등장하며 얽히고설킨 복잡한 상황인데 정책기관이 균형을 잡고 공정한 룰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MB가 시장주의 표방? 진짜 시장주의자라면 종편 출범시킬 수 없어”
애초 정부가 제시한 목표치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종편에 대해서도 쓴 소리가 나왔다.
이명박정부의 방송정책 가운데 대표적 실패사례라는 이유에서다.
정인숙 가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새로운 매체정책을 도입할 때 장기적 효과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저 누구에게 이익이 가나, 규제기구가 단기적 이익만 생각하고 특정업자에 좌우됐다는 데 우리 모두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교수는 “이 정부가 시장주의를 표방했다고 하지만 방송정책에 시장주의를 펼쳤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수많은 반대에도 종편을 출범시킨 것, 그것을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로 포장한 것 자체가 사익에 의해 움직인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사회자로 참석한 강대인 전 방송위원장도 목소리를 보탰다.
강 전 위원장은 “정치적 인물이 방송정책기구의 수장이 됐을 때 어떤 문제를 낳았는가, 지난 4년 동안 충분히 배웠고 그 자체로 반면교사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민이 바라는 지상파방송 역할 필요..MBC 역시 공공영역에 붙잡아 둬야”
참석자들은 차기 정부의 방송정책 과제로 복지와 공공성을 꼽는 데 이견이 없었다.
또 방송의 공익성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공영방송 역할을 강화하는 방법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주정민 전남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공영방송 서비스를 강화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공영방송법이나 공영방송위원회를 별도로 만드는 방식을 써서 공영방송을 명확히 규정하고 위원회에서 사장을 임명하며 관리감독을 맡기자”고 말했다.
주 교수는 “책임을 부여하는 공영방송에 KBS, EBS와 함께 가급적 MBC도 끼워넣고 또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측면에서 지역방송도 포함시키자”고 덧붙였다.
조항제 교수도 공영방송의 역할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유료방송에 공적 서비스를 맡기면 사업자 성격상 이용자에 비용 부담을 지우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KBS, EBS, MBC는 물론 보도전문채널인 YTN 등 직간접적으로 공영성을 갖고 있는 방송을 별도로 분류해 내 이들을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소유구조와 재원구조에서 공ㆍ민영 성격차가 드러나는 MBC에 대해서도 공영성을 보다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강혜란 위원은 “지상파방송에 진정한 의미의 공공서비스 책무를 맡겨야 한다”며 “MBC 역시 공공서비스 영역에 묶어야지 사업자영역에 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더는 정치가 방송에 개입하지 못하는 사회 오길 간절히 바라”
윤석민 교수는 “시청자 중심의 방송, 미디어산업 육성은 영원한 숙제”라면서 “그 절묘한 균형을 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누가, 누가 정치권에 발을 들인다는 이야기가 돈다”며 “더는 그런 예측이 나오지 않는 정부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제발 정치가 방송과 미디어 등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곳에 개입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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