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여기가 나의 마지막 정당이다"
격랑에 휩싸인 통합진보당의 유시민 공동대표가 측근들에게 전한 말이라고 한다.
유 대표는 최근 당 대표와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권을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대권 도전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맥락 속에서도 통합진보당이 자신의 마지막 정당임을 밝혔다.
결국 유 대표의 발언은 현재 불거지고 있는 정당민주주의 훼손 문제를 반드시 풀고 넘어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 대표는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쟁명부 비례후보자 14명 총사퇴 권고안으로 인한 승계와 관련해 "당이 잘못한 일로 죄가 없는 비례대표도 사퇴하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제가 승계하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당 대표 선거에도 안 나간다"며 혁신 비대위를 맡을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도 "내가 당을 잘못 운영해서 이런 건데 내가 위원장하면 어느 국민이 혁신을 기대하겠나"고 선을 그었다.
이로써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며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기도 했던 유 대표는 12월 대선을 포함해 당직 등 일선에서도 사실상 물러날 공산이 커진 것이다.
앞서 유 대표는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12번을 자청해 정당지지율 도모를 꾀하는 배수진을 쳤지만 10.3%에 그쳐 원내 재진입에 실패했다.
여기에 국민참여당 출신이 대부분 낙마했고, 천호선 대변인 마저 은평을에서 접전 끝에 이재오 의원에게 패해 당내 기반이 허약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유 대표의 피로감도 극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참여당 출신 통합진보당 당원들 사이에는 얼마전부터 유 대표가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유시민 정계은퇴? 분당? "여기가 마지막 당이다"
하지만 참여계 당원들이 갖고 있는 유 대표의 정계은퇴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유 대표가 비례경선 부정 사태와 관련돼 전개된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당개혁에 대한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6일 기자들에게 "분당은 할 수 없다"며 "분당해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렵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어 "실제로 분당이라는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들의 한계와 문제가 있었지만 국민들이 10%가 넘는 정당지지를 보내줬고, 13석의 의석을 획득한 정당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분당한다는 건 민의에 반하는 것이고 국민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 스스로는 결코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가거나, 탈당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대표와 비대위원장 모두 포기한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을 사수하겠다는 것은 정당개혁을 위해 백의종군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유 대표는 7일 대표단회의에서도 이정희 공동대표와 다시 한 번 날을 세웠고, 김재연·이석기 당선자가 잇따라 '사퇴불가'를 외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정당개혁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 대표측 핵심 관계자는 "유 대표가 총선이 끝난 뒤 당 대표와 대선후보 모두 나서지 않는 쪽으로 고민을 했다. 비례경선과 관련된 문제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에 당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유 대표가 혹시 일이 안 되더라도, 여기가 마지막 당이라며 다시 갈라서거나 당을 깨고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번에 비례부정을 제대로 밝히고, 다시는 재발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대중적 진보정당의 꿈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야 전당대회도 치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만약 이번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경우, 유 대표가 정치를 그만뒀으면 그만뒀지 분당을 불사하는 등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결국 당권과 대권 모두 포기하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정당혁신에 정치인생을 걸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유 대표의 생각대로 통합진보당의 혁신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에서는 당원명부도 검증되지 않은 통합진보당의 현실을 볼 때, 당권파의 요구대로 당원총투표로 이석기 당선인 등의 거취를 결정하게 되면 사퇴를 피해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12일 개최되는 중앙위원회에서도, 중앙위원이 민노계 55%, 참여계 30%, 통합연대 15%의 비율인 만큼 총사퇴 권고안과 비대위 구성안 등을 놓고 격론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 전국운영위에서 생생하게 보여주었듯이 당권파가 물리력을 동원해 극렬하게 저항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쉽사리 봉합을 점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통합진보당의 최대정파인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8년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갈등이 증폭돼 분당사태를 맞은 바 있다. 최근 통합진보당이 처한 상황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건재해 분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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