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거의 모든 게 2004년과 비슷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행보가 그렇다. 선거전략도, 정당조직 정비도, 하는 말도 비슷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공포의 대상 만들기'다. 그리고 '견제론'과 '읍소'를 동반하는 것도 그렇다.
박 위원장은 5일 울산을 방문해 선거유세를 하면서 "새누리당은 위험한 거대 야당의 폭주를 막아내고 민생을 지킬 유일한 정당"이라며 "저희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위험한' '거대 야당'의 '폭주'라는 표현은 그냥 듣기에도 공포스럽다. 누군가가 목에 줄을 매어놓아야 할 것 같고, 쇠창살 안에 가둬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거대 야당'이 될지, 지금처럼 소수 야당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박 위원장의 '위험한 거대 야당의 폭주'와 같은 발언은 유권자들에게는 새누리당이 크게 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새누리당이 '약자와 소수정당'인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전략은 2004년에도 이미 활용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3당은 200석도 훨씬 넘는, 그야말로 '거대한 야당'으로서 47석에 불과한 '초미니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육탄저지를 뚫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발의라는 '힘'을 보여준 바가 있다.
이 때문에 탄핵역풍이 불어 위기에 처하자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총선을 진두지휘하던 박 위원장은 '개헌저지선'을 읍소했다. 이번 총선에서 '거대 야당 견제론'을 펴는 것처럼 '거대 여당 견제론'을 편 것이다. 박 위원장의 발언으로 유권자들은 47석에 불과한 열린우리당이 이미 200석 넘는 거대 여당이 된 듯한 착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박 위원장의 전략은 먹혀들어갔다. 개헌저지선인 100명을 훌쩍 뛰어넘는 121석을 획득한 것이다. 다른 야당을 합치면 개헌저지선은 애당초 필요하지도 않았던 구호였다.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획득해 간신히 과반수를 넘겼지만, 몇 개월을 못넘기고 과반수가 무너졌다. 그리고 법안 하나 처리하는데도 간난신고를 겪어야 했다. 급기야 2007년 6월에 73석으로 줄어들더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문을 닫아야 했다.
박 위원장의 읍소작전이 먹힌 것이다.
박 위원장이 이날 울산 선거유세에서 "위험한 거대 야당의 폭주"라는 표현을 한 것은 이 때문에 2004년과 유사하다.
2004년에 '개헌도 가능한 거대 여당'이라는 실현되지 않은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 '개헌저지선'을 읍소하고 다녔던 것처럼, 이번에는 '위험한 거대 야당의 폭주'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거대 야당'이 이미 실현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박 위원장의 공포심리와 견제심리를 자극하는 '위험한 거대 야당 폭주론'이 유권자들에게 먹히는지 안먹히는지는 4월11일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동시에 2004년과 2012년이라는 8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유권자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가늠해보는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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