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갇힌 여인'에서 화자는 연인 알베르틴을 파리 자신의 아파트에 가두어둔 채 끝없는 의심과 불안의 늪 속에서 질투의 열병을 앓는다. 화자는 알베르틴의 마음속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마치 과학자나 수사관처럼 그녀의 모든 일상을 계측하고 분해하기 시작한다.
"외출 시간, 영수증, 전화를 걸어온 상대의 미세한 음조와 침묵의 간격까지, 그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경험적 단서를 데이터로 수집한다. 그리고 논리적 인과관계를 빈틈없이 직조하여 알베르틴의 알리바이를 검증하고 그녀의 부정을 입증하려는 추론의 성채를 쌓아 올린다. 그러나 논리가 정교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진실은 저 멀리 달아난다. 차가운 계측과 논리적 연역은 알베르틴의 표면적 동선만을 재구성할 뿐, 그녀의 내밀한 욕망과 영혼의 맥락에는 결코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자신의 오감을 찌르는 직관적 의심과 데이터가 증명하는 논리적 완결성 사이에서 끝없이 분열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재해석 및 재구성)
질투라는 감정의 포로가 돼 이성적 추론의 성채에 갇힌 화자는, 계측 가능한 지표로 타자를 완전히 소유할 수 있다는 오만이 낳은 비극적 실존을 보여준다. 현대 기업 경영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은 화자가 알베르틴 주변에 구축한 정밀한 감시망과 닮았다. 오늘날의 기업은 고객의 클릭 스트림, 체류 시간, 구매 이력, 물류 이동 경로, 감성 분석 지표 등 매초 쏟아지는 방대한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밀어 넣으며 미래 시장의 향방을 예측한다. 대시보드 위에 떠오르는 화려한 통계 그래프와 예측 모델은 경영진에게 불확실성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매혹적인 환각을 선사한다.
그러나 시장의 기저에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태동하거나, 수치화하지 않는 인간의 복잡한 욕망과 문화적 맥락이 요동칠 때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완벽한 논리는 종종 치명적인 맹목으로 변질된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객관적 지표와 경영자가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선다. 숫자의 완벽한 논리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데이터의 한계를 직시하고 정량화하지 않은 현실의 맥락을 꿰뚫는 직관의 결단을 내릴 것인가.
데이터 만능주의와 통계적 합리성의 이상
경영에서 직관을 배제하고 계측과 분석을 통해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20세기 초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은 주먹구구식 장인적 감각을 스톱워치와 작업 분석이라는 정량적 표준으로 대체하며 대량생산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발전한 '작전 연구(OR, Operations Research)'와 '통계적 품질관리(SQC)'는 경영을 숫자로 통제할 수 있는 과학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21세기 디지털 혁명과 함께 등장한 빅데이터 분석과 기계학습은 이러한 정량적 환원주의의 정점에 서 있다. 전산 능력의 비약적 발전과 초연결성은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의 실시간 분석을 가능하게 했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DDDM, Data-Driven Decision Making)'은 현대 기업의 절대적인 규범으로 안착했다.
통계적 의사결정과, 새로운 정보나 데이터가 수집됨에 따라 기존의 신념이나 가설의 확률을 갱신해 나가는 방식인 베이지안 추론의 관점에서 볼 때 DDDM은 인간이 가진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인간은 확증 편향, 가용성 휴리스틱, 손실 회피 성향 등 무수한 심리적 오류에 취약하다. 알고리즘은 인간의 일부 판단 오류를 줄이고 일관된 분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학습 데이터, 목표 설정, 설계와 운용 과정의 편향까지 자동으로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대리인 이론의 시각에서도 고도화한 데이터 분석은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이 독단이나 사적 욕망을 앞세워 주주의 이익을 훼손하는 도덕적 해이를 견제하는 투명한 거버넌스 장치로 기능한다. 숫자로 뒷받침되지 않는 직관은 무책임한 도박으로 치부되고, 정량적 근거만이 자본과 이사회를 설득할 수 있는 사실상 공용어가 된 것은 자본주의 고도화의 필연적 귀결인 셈이다.
논리의 질투
프루스트 소설 속 화자가 알베르틴의 사소한 메모와 시간표에 집착할수록 본질적인 진실에서 멀어졌듯, 현대 기업 역시 빅데이터의 찬란한 논리에 매몰될 때 치명적인 전략적 실명을 겪는다. 과학철학과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알고리즘이 내포한 '논리의 질투'는 인간 인식의 본질적 차원에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가장 먼저 시간 차원의 함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 데이터의 감옥이다. 데이비드 흄이 일찍이 간파했듯, 귀납적 추론은 과거의 관찰이 미래에도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는 불완전한 전제 위에 서 있다. 나심 탈레브의 『블랙 스완』에 등장하는 칠면조처럼, 1000일을 축적된 완벽한 사육 데이터는 1001일째 닥쳐올 추수감사절의 도살을 결코 예측하지 못한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훈련 데이터의 잡음까지 지나치게 정밀하게 학습하여 새로운 환경에 대한 일반화 능력을 잃어버리는 '과적합' 현상처럼, 기업이 기존 고객의 데이터 패턴에 과도하게 최적화할수록 시장 외곽에서 태동하는 구조적 지각변동을 감지하지 못한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때로 가장 정교한 오답을 유도한다.
인과 차원의 함정도 가능하다. 널리 알려진 헤일로 효과나, 상관관계의 인과론적 착시를 들 수 있다. 튜링상 수상자인 컴퓨터과학자 주디아 펄은 인간의 인과 추론 능력을 3단계로 구분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1단계인 '단순 연관(Association: 무엇이 함께 일어나는가?)'을 찾는 데는 탁월하지만, 2단계인 '개입(Intervention: 행동하면 어떻게 되는가?)'과 3단계인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s: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인과적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보았다.
헤일로 이펙트 또한 결과론적인 성공 지표(매출, 주가)의 후광에 눈이 멀어 수많은 우연적 상관관계를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둔갑시킨다. 성공이라는 후광이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이렇게 오염된 평가를 다시 성공의 원인으로 제시하면, 성과를 성과로 설명하는 순환논리에 빠지기 쉽다. 데이터가 가리키는 피상적인 상관관계에 기대어 가격 정책이나 마케팅을 기계적으로 집행할 때, 기업은 소비자의 진정한 충성도를 잠식하고 브랜드의 영혼을 갉아먹는 교각살우를 범하게 된다.
양과 질의 차원에서 생기는 함정도 있다. 빅데이터가 양이라는 '규모'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정서, 문화적 맥락, 형언할 수 없는 삶의 의미를 담아내는 '깊이'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느 인류학자가 통찰했듯, 생리적 눈 깜빡임과 의미 있는 윙크를 구분하는 능력은 문화적 맥락의 해석을 통해서만 획득된다.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장의 인간적 맥락을 노이즈로 취급하여 삭제해 버릴 때 기업은 치명적인 '맥나마라 오류(McNamara Fallacy)'에 빠진다. 소설 속 화자가 알베르틴이 찻잔을 내려놓을 때 짓던 쓸쓸한 미소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듯, 엑셀 시트에 갇힌 논리는 시장의 심장을 꿰뚫지 못한다.
하워드 슐츠 당시 스타벅스 최고경영자는 밀라노 에스프레소 바에서 느낀 공간의 마법을 확신해 '제3의 공간'을 일궈냈다. (사진=뉴시스)
역사가 증명하는 파국
데이터의 논리가 파국을 초래한 비극적인 사례는 1960년대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수행한 '통계 전쟁'이다. 포드 자동차 출신으로 철저한 정량 분석의 신봉자였던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을 철저히 수치화한 데이터로 지휘했다. 적군의 사살자 수, 투하된 폭탄의 톤수, 보급 물자 소모량 등 정량적 지표만을 수집하여 전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숫자로 환산할 수 없었던 베트콩의 이념적 결의, 정글이라는 지리적 맥락, 민심의 향방을 무시한 대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뼈아픈 패배로 귀결했다. 베트남전의 사살자 수 등 수치화 중심 성과평가는, 측정 가능한 전과와 전략적 성공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맥나마라 자신도 전쟁 도중 큰 적군 손실이 사기 붕괴나 정치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계측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고 계측 가능한 지표에만 매달리는 치명적인 오류를 '맥나마라 오류'라 부르게 되는 후대의 수치를 모면하지는 못했다. 문제는 단순히 숫자를 사용한 데 있지 않고, 지표와 실제 전쟁 목표 사이의 관계를 잘못 판단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역사에서 맥나마라 오류와 유사한 비극은 수없이 반복된다. 1950년대 포드사가 수많은 시장 조사와 정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출시했으나 참담하게 실패한 에드셀(Edsel) 등 앞서 살펴본 함정에 빠진 사례는 많다.
반대 사례도 많다. 비즈니스 역사의 위대한 도약은 종종 기존 데이터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지점에서 경영자의 직관적 결단을 통해 탄생했다.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는 녹음 기능이 없고 재생만 되는 소형 기기는 팔리지 않는다는 시장 조사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간파한 직관으로 '워크맨'을 탄생시켰다.
스티브 잡스 역시 "고객은 제품을 직접 보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와 정량 조사를 불신하고, 인간의 감각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밀어붙였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는 밀라노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느낀 공간의 마법과 인간적 유대라는 '제3의 공간' 감각을 확신했다.
맹목적 도박이 아닌 '체화한 전문성'
경영자의 직관이란 것이 데이터의 과학에 대립하는 비합리적 미신이나 무모한 도박일까. 직관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의 인지 능력이 환경의 복잡성을 완전히 계산할 수 없다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설파하며, 전문가의 직관을 "오랜 경험을 통해 뇌 속에 축적된 방대한 지식의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으로 정의했다. 급박한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장이 즉각적으로 탈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현장을 거치며 열기, 연기의 색깔, 바닥의 미세한 진동 등을 무의식으로 종합하여 위험의 징후를 판별해 내는 고도의 암묵지를 체화하였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직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독선적 고집이 아니다. 수없이 실패하고 성공하며 시장의 최전선에서 고객의 숨소리를 듣고, 공급망의 삐걱거림을 지켜보며 온몸으로 체화한 '맥락적 데이터의 고밀도 압축물'이다.
빅데이터가 객관적 사실(What)을 정밀하게 계측한다면, 경영자의 직관은 그 이면에 도사린 인간의 본성과 상황의 본질(Why & How)을 꿰뚫어 보는 통찰이다. 따라서 직관과 데이터는 양자택일의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맹점을 비추는 보완적 거울이어야 한다. 다만 전문가의 직관은 학습 가능한 규칙성과 충분한 피드백이 있는 환경에서 발달할 수 있으며, 과거의 규칙이 무너지는 시장에서는 알고리즘뿐 아니라 경영자의 숙련된 직관도 오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혁신은 알고리즘의 분석과 현장의 직관을 결합할 때 가능하다. (이미지=챗GPT)
알고리즘과 직관의 통섭
빅데이터 분석의 정밀함과 경영자의 직관이 충돌할 때 기업은 어떻게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허버트 사이먼은 ①정보수집(Intelligence) ②설계(Design) ③선택(Choice) ④검토(Review)라는 데이터와 직관이 결합하는 의사결정 4단계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의사결정에는 결국 인간 직관, 통계와 빅데이터의 합리적 추론, 현장 인류학, 리더십 책무와 적정 거버넌스라는 네 가지 주체와 각자의 기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의사결정의 출발점은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의 직관과 호기심이어야 한다.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이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를 묻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직이 어떤 문제를 중요하게 다룰지, 누구의 이익과 피해를 고려할지, 어떤 목표에 책임을 질지는 인간의 숙고 안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시장의 결핍, 고객의 숨겨진 고통,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파괴적 가능성을 감지하는 것은 인간의 감수성과 통찰을 통과해야 한다. 직관을 통해 대담하고 창의적인 가설을 먼저 세우지 않는다면, 알고리즘은 대체로 과거의 질문을 반복하며 점진적 개선의 쳇바퀴만 돌릴 뿐이다.
더불어 직관으로 세운 가설은 즉각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라는 검증대에 올려져야 한다. 가설은 반증의 시도를 견뎌낼 때 강해지고 지지된다. 가설이 경영자의 사적 욕망이나 확증 편향에서 비롯된 망상은 아닌지, 통계적 데이터와 머신러닝 시뮬레이션을 통해 혹독하게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이 단계에서 데이터 분석은 직관의 오만을 견제하고 리스크를 계량화하는 냉철한 필터로 작동한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 전문가 크리스티안 마츠비에르그가 '센스메이킹(Sensemaking)'이란 용어를 내세웠듯, 정량적 데이터와 경영자의 현장 감각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경영진은 스프레드시트를 덮고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인류학적 관찰, 심층 고객 인터뷰, 공급망 실사 등 질적 데이터를 투입하여 정량 데이터와 현장 직관 사이의 간극을 입체적으로 대조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이상치나 노이즈로 기각해 버린 수치 속에 새로운 혁신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분석과 검증이 끝난 후, 최종적인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결국 리더의 몫이다. 수학적 계산만으로는 불확실성을 뚫고 나아가는 투자가 일어날 수 없다. 기업의 장기적 정체성과 인본주의적 가치에 부합한다면, 리더는 데이터의 한계를 딛고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다만 그때에도 적정한 거버넌스를 가동해 타당성을 책임의 프리즘을 통해 끝까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치용의 Critique: 차가운 계측을 넘어, 현장의 영혼을 품는 결단으로]
프루스트의 화자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랑을 얻지 못했고 연인의 갑작스러운 탈출과 죽음을 막지 못했다. 사랑의 본질은 계산 가능한 기하학이 아니라, 타자의 불안과 슬픔을 온몸으로 공감하는 관계의 총체성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 빅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이라는 눈부신 거울은 과거의 궤적을 비추고 현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례없이 기여했다. 그러나 데이터의 수학적 완결성에 매몰되어 현장의 땀방울과 고객의 고뇌를 지워버리는 순간, 데이터는 시장의 실체를 가리는 또 다른 '논리의 질투'이자 '눈먼 우상'이 된다. 데이터의 차가운 눈과 현장의 뜨거운 심장이 하나로 결합할 때, 기업은 지속 가능한 혁신의 시간을 되찾게 된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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