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이 새 지도부를 꾸렸다. 김민석 신임 대표가 선호투표제 끝에 정청래 후보를 꺾고 당권을 잡았고 최고위원단은 친청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구도로 짜였다. 표면적으로는 새 리더십의 출범이지만 그 이면에는 친명과 친청 세력 간의 골 깊은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라면 응당 국정 운영의 방향, 민생 현안에 대한 해법이 중심 의제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를 지배한 것은 노선의 선명성을 둘러싼 계파 간 경쟁이었다. 경기 둔화, 부동산 시장의 불안, 주식시장의 변동성처럼 국민의 삶을 직접 좌우하는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야당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장동혁 지도부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음에도 당권 방어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의 복당 문제를 두고는 사실상 불허 기조를 이어가고 있고 한동훈을 도왔던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는 징계 절차까지 거론된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돌아보고 쇄신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당내 이견을 단속하고 특정 계파를 솎아내는 데 힘을 쏟는 형국이다. 혁신의 언어는 실종되고 방어의 언어만 남았다.
정치는 본래 경쟁의 산물이다. 여당이 실력을 갖추어야 야당은 안일함에 안주할 수 없고 야당이 실력을 갖추어야 여당은 오만해질 겨를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긴장시키는 이 견제와 경쟁의 메커니즘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갱신하는 동력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는 여야 모두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계파 다툼과 방어적 태도로 서로의 수준을 확인시켜 주는, 이른바 하향 평준화의 경쟁이다. 여와 야가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기를, 누가 더 민생을 챙기는지를 두고 다투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이런 현실 앞에서 성급한 정치 허무주의나 냉소적 무관심으로 흐르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 정치의 품질을 유독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유발과 극단적 양극화, 일본의 세습 정치와 관료화된 여당 독주, 중국과 러시아의 억압적 일당 체제와 비교해 보면 한국 정치가 결코 함부로 폄훼될 수준은 아니다. 선거로 정권이 바뀌고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며 시민사회가 정치를 감시하는 시스템 자체는 여전히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정치 세력들의 안일함이지 시스템 자체의 결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이 정치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지간해서는 만족하지 않는, 까다롭고 높은 기준을 가진 국민성이야말로 한국 정치를 지금 이 수준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이었다. 낮은 평가는 실망의 표현이자 동시에 더 나아지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그 깐깐함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권이 그 기준에 부응하려는 긴장감을 되찾아야 한다.
지금 여야에 필요한 것은 계파의 논리가 아니라 실력의 언어다. 민생의 현장에서 답을 찾고 정책으로 서로를 압박하며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성과로 경쟁하는 정치. 그런 정치를 만들어내라는 것이 국민이 낮은 점수로 보내는 진짜 메시지일 것이다. 여야 모두 이 신호를 허투루 듣지 않기를 바란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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