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SK,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등 SK그룹 3사가 SK하이닉스의 미국 중간지주회사(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에 2030년까지 총 11억1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출자 약정(Capital Call)을 체결한바, 현재 이미 약정분 상당수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솔리다임(Solidigm)의 AI 낸드(eSSD) 수요 급증으로 수십조원대 상장(IPO) 몸값이 거론되는 것과 비교해, 계열사들의 지분 취득가가 낮아 시장에선 회사기회유용 또는 모회사 주주가치 희석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19일 금융감독원 반기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지주사인 SK는 총 2억5000만달러 약정 중 이미 1억3389만달러(약 1800억원)를 납입해 반기 말 기준 지분 1.8%를 확보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종속기업(SK Innovation America, Inc.)을 통해 0.6% 지분(취득원가 894억원)을 1차로 확보한 데 이어, 반기 결산 직후인 7월23일 1억4340만달러(약 1900억원)를 추가 출자했습니다. SK텔레콤의 경우 2030년 6월을 기한으로 4억8000만달러 한도 내 출자를 약정하고 있으나 아직 집행 전입니다. 이들 계열사는 최장 2030년까지 출자 약정 기한이 남아 있음에도 발행회사(피출자법인)의 출자금 납입 요청에 따라 이미 상당 부분 자금을 조기 집행했습니다. 더욱이 7월 말 출자분은 솔리다임 상장설이 급부상한 시점과 가까운 만큼,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장 가치가 고려됐을 수 있습니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즈의 상반기 말 기준 장부상 순자산(총자본)은 약 8조2261억원입니다. SK㈜(1.8%, 1800억원)와 SK이노베이션(0.6%, 894억원)의 지분 취득 가액을 역산하면, 해당 기업의 가치를 대략 10조원에서 15조원 수준으로 평가하고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장부상 순자산 대비 주가순자산비율(PBR) 1.2~1.8배 수준이라 가치평가는 일견 적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사업부(현 솔리다임)를 인수할 당시 투입한 원금이 90억달러 정도로 현재 환율 기준 약 12조원 안팎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계열사들은 비록 소량이지만 과거 취득원가 수준에서 지분을 확보한 셈입니다.
이는 자본시장의 시선과도 격차가 큽니다. AI eSSD(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수요 폭발로 솔리다임의 턴어라운드가 본격화되면서, 증권가에서는 솔리다임의 상장 몸값이 최대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산술적으로 50조원의 미래 가치가 반영된 상황이라면 SK의 경우 지분 1.8%를 확보하기 위해 9000억원이 필요합니다. 즉, 솔리다임이 상장한다면 계열사들은 프리미엄이 폭발하기 전 지분을 선점한 결과가 됩니다.
기업거버넌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배구조가 모회사인 SK하이닉스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논평을 통해 "솔리다임은 과거 인텔 낸드 사업부가 이관되어 수년간 대규모 적자 후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며 "그동안 참고 기다렸던 일반주주 권익을 침해하지 말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포럼 측은 터널링(Tunneling·부의 이전) 우려를 직격했습니다. 포럼은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 현금배당의 극히 작은 부분을 수취하지만 모든 단계의 기업 경영진을 임명하고 이사회를 통제한다"며 "지배주주인 최 회장의 배당권(현금흐름권)이 낮은 회사(SK하이닉스)로부터 현금흐름권이 높은 회사(SK, SK텔레콤)로 부의 이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공시에 따르면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출자 예정 캐피탈 콜을 이사회 결의했다"며 "주주 간 부의 이전은 일반주주 입장에서 경계 대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 측은 시장 일각의 주장이 기업의 비즈니스 현실을 간과한 과도한 억측이라고 반발했습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향후 AI 관련 투자 법인은 모두 해당 조직 산하로 편제될 예정이며, 이번 출자 역시 철저히 그룹 차원의 AI 밸류체인 시너지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터널링(부의 이전) 등의 지적에 대해서는 "솔리다임을 포함한 관련 사업들이 연계되는 정상적인 구조 개편일 뿐, 계열사 가치 상승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계됐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습니다. 특히 "상장을 염두에 두고 미리 투자했다는 의심은 기업의 정상적인 사업 활동마저 가로막는 무리한 해석"이라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사 측은 올해 초 발표한 SK하이닉스 본체의 미국 법인 100억달러(약 14조원) 추가 출자가 순차적으로 집행되면 계열사들의 소수 지분율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역으로 SK하이닉스가 14조원을 감당할 여력이 있음에도 굳이 (미국 법인에 대한) 10조원대 밸류에이션으로 계열사들에 지분을 양도할 재무적 명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솔리다임 상장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검토 방안 중 하나"라면서 전면 부인하진 않습니다. 향후 솔리다임 상장이 본궤도에 오를 경우, 증권신고서에 담길 기업가치와 계열사들의 과거 출자 가액 간의 차이를 사 측이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지 또 다른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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