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연인의 휴대전화에 이른바 '자녀 관리 앱'을 몰래 설치한 뒤 2년 넘게 통화 내용과 문자메시지, 위치 정보 등을 들여다본 피고인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자녀 보호 명목의 애플리케이션(앱)이 실제로는 연인 관계에서 상대방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겁니다. 하지만 법원의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쳐, 디지털 스토킹 기술의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주말인 2016년 10월2일 서울 서초구 한 예식장에서 '란파라치' 수강생들이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산지법 형사합의7부(재판장 임주혁)는 지난 6월2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B씨와 연인 관계였던 A씨는 유튜브 광고를 통해 배우자를 감시할 수 있는 앱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앱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앱 운영자 등으로부터 상대방의 통화 내용, 문자메시지, GPS 위치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을 소개받고 이를 구매했습니다.
A씨는 피해자 B씨의 휴대전화에 '자녀용' 앱을 설치한 뒤, 자신의 휴대전화에 설치한 '부모용' 앱으로 피해자의 정보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A씨는 2022년 6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약 2년5개월 동안 B씨 휴대전화의 통화 내용, 문자메시지 내용, 위치 정보 등을 열람했습니다. 또 피해자 B씨의 휴대전화의 실시간 마이크와 녹음 기능도 활성화해 공개되지 않은 대화 내용을 녹음하거나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씨는 B씨의 동의를 얻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앱 운영자 등과 공모해 악성프로그램을 설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위 앱 운영자 등과 공모해 정보통신 시스템 등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해 이를 전달 또는 유포하고,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처리·보관 또는 전송되는 타인의 비밀을 침해했다"고 말했습니다.
A씨가 피해자의 공개되지 않은 대화 내용까지 녹음하거나 청취한 사실도 인정됐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휴대전화에 설치된 '부모용' 앱을 이용해 피해자의 통화 내용 및 실시간으로 마이크와 녹음 기능을 활성화시켜 녹음된 대화 내용을 청취하거나 녹음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치정보법 위반도 유죄로 판단됐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약 2년이 넘는 동안 피고인의 휴대전화에 설치된 '부모용' 앱을 이용해 피해자의 위치 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열람했다"며 "개인위치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해당 개인위치정보를 수집·이용 또는 제공했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시 기술의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행법상 피해자 동의 없는 감청, 정보통신망 침입, 위치 정보 수집 행위는 각각 통신비밀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위치정보법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연인이나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서 앱을 이용해 상대방을 장기간 감시·통제하는 행위까지 '디지털 스토킹'으로 규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법무부에 따르면, 온라인 스토킹으로 기소된 인원은 △2021년 10~12월 124명 △2022년 3456명 △2023년 4819명으로 증가세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불법 프로그램 설치 사건으로만 볼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행법으로 개별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장기적 감시와 통제를 스토킹 범죄로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오민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는 "이런 문제는 양형의 문제로 볼 여지가 있다"며 "모든 기술 영역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담기는 어려운 만큼, 법원의 해석을 통해 기술 발전과 흐름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문혜정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도 "(온라인 스토킹 사건은) 현재로서는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위치정보법 등 개별 법률로 처벌하는 구조"라면서 "디지털 영역은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입법이 뒤늦게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자녀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앱이 연인이나 배우자 감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처럼, 새로운 범행 방식이 나타날 때마다 법 적용과 입법 보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일반적으로 초범이거나 합의가 이뤄진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범죄 전반에서 중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 한 실형 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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