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철도는 과거부터 산업의 대동맥 역할을 하며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공급망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물류와 산업 전반을 연결하며,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입니다. 그 중요성에 비해, 대중의 관심에서 비껴 서 있던 철도산업의 기술경쟁력이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철도 핵심 부품과 시스템의 국산화율이 9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특히 고속철도차량의 경우 자체 설계·제작이 가능한 국가는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소수 국가에 불과한데,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며 철도 기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최근에는 해외 고속철 시장에서 수출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준비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현대로템이 제작한 KTX-청룡. (사진=현대로템)
해외와의 기술 격차 불과 ‘2년’
현재 고속철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는 일본, 프랑스, 독일 정도입니다. 한국(2004년)은 일본(1964년), 프랑스(1981년), 독일(1991년) 등에 비해 고속철 도입 시기가 늦은 후발 주자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국내 철도업계는 기술 자립 기반을 꾸준히 다져왔고, 그 결과 2004년 KTX 도입 당시 58% 수준에 머물렀던 고속철도차량 국산화율은 현재 90% 수준까지 올라섰습니다.
최근에는 부품 국산화도 추가로 진전되고 있습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지난해 12월 철도차량 핵심 부품 15종 개발을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코레일은 이번 사업을 통해 KTX-이음 부품 국산화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차량 안전과 성능에 직결되는 핵심 부품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레일은 이를 통해 해외 철도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도 기존 4.9년에서 약 2년 수준까지 좁혔다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고속철 기술력이 해외와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최진석 철도경제연구소 소장은 “물론 해외 철도 선진국에 비해 에너지 효율 등 일부 기술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속도 등 주요 기술력은 뒤처지지 않는 만큼 충분히 기술 선진국 범주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우즈벡 수주 이끈 ‘패키지 전략’
이러한 기술 축적을 바탕으로 국내 철도업계는 2024년 6월 KTX 도입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속철 수출에 성공했습니다. 현대로템은 우즈베키스탄 철도공사와 약 2700억원(약 2억달러) 규모의 고속철 차량 공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현대로템은 KTX-이음을 기반으로 한 고속철 차량 6편성(총 42량)을 공급할 예정으로, 2027년부터 현지 노선에서 운행될 계획입니다.
우즈베키스탄 고속철 수주에 성공한 배경으로는 ‘패키지 수출’ 전략이 꼽힙니다. 업계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은 앞서 스페인 ‘탈고(TALGO)’ 고속철을 도입해 운영해 왔지만, 차량 유지보수와 정비 기술을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유지관리 비용 부담이 컸고, 고장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현대로템의 ‘우즈벡 고속차량 초도편성 출항식’이 열린 가운데, 행사 참석자들이 수출용 고속차량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현대로템)
이에 우즈베키스탄은 이후 고속철 도입 사업에서 단순 차량 구매보다 운영 경험과 정비 기술 이전까지 포함한 ‘패키지 협력’을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은 2004년 KTX 개통 이후 약 20년 동안 고속철을 운영하며 다양한 운영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여기에 현대로템은 차량뿐만 아니라 유지·보수·운영(MRO) 등 기술 이전까지 포함한 패키지를 제안해 결국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우즈베키스탄 수출을 계기로 중앙아시아 고속철 시장 진출의 시발점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우즈베키스탄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철도망을 공유하고 있다”며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 고속철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출 확대 위해선 ‘실적’ 과제
사실 글로벌 철도 시장에서 국내 철도업계의 점유율은 약 1~1.2% 수준에 머물러 있어 영향력이 상당히 제한적인 편입니다. 고속철 수출 역시 현재까지는 우즈베키스탄 한 건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2024년 9월 현대로템이 독일 베를린에서 TSI 설계부문 인증서를 받았다. (사진=현대로템)
업계에서는 철도 수출의 특성상 무엇보다 실적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추가 수주를 통해 운행 실적을 쌓고 신뢰도를 높여야 신규 시장 진출도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일본 고속철 차량은 한 량당 약 80억원 수준인 반면 국내 차량은 약 55억원 수준으로 가격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철도는 대표적인 공공 인프라인 만큼 발주국들이 가격뿐 아니라 운행 실적과 기술 신뢰도를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분석입니다.
이에 국내 유일의 고속철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24년 9월 국내 철도업계 최초로 유럽 철도 운영 호환성 기술 기준인 ‘TSI’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TSI는 유럽연합이 회원국 간 열차 운행의 호환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정한 기술 기준으로, 해당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차량 성능과 안전성, 생산 역량 등이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업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철도 기술 기준을 갖춘 유럽에서 TSI 인증을 획득했다는 것은 호환성뿐 아니라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함께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모로코 등 비유럽 국가에서도 TSI 인증 여부를 평가 요소로 반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TSI 인증이 사실상 글로벌 철도 시장에서 기술 신뢰도를 입증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기술 이전과 운영 협력 등을 포함한 패키지 전략을 통해 추가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며 “TSI 인증 등을 통해 확보한 기술 신뢰도를 바탕으로 해외 철도 시장 공략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3회에서는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반도체 핵심 부품인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를 토대로,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을 맞아 전자부품 업계가 마주한 ‘슈퍼사이클’을 조명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