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요 공간 콩브레에서 '생틸레르의 종탑'은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화자에게 종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그것은 마을의 어디서든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이며,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이자, 콩브레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다.
현대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이 종탑은 기업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자, 그 목적을 공유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표상이다. 과거의 경영이 주주라는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종탑의 높이를 수직으로 올리는 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그 종탑이 마을(사회) 전체에 어떤 울림을 주는지, 그리고 그 울림이 모든 구성원의 삶과 어떻게 정렬(Alignment)되는지를 수평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비즈니스의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경영학사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았고 동시에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을 꼽으라면 밀턴 프리드먼의 경구를 빼놓을 수 없다. 번역은 "사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로 해야 하겠지만, 원래 문장은 "The business of business is business"이다. 이 표현이 프리드먼의 1970년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고문에 직접 등장하는 문장은 아닐지라도, 사실상 프리드먼의 경구로 인용된다.
이 경구는 시어로도 레빗의 "비즈니스의 기능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1958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 기고문('The Dangers of Social Responsibility')의 주장과 맥을 같이하며 주주 우선주의 시대를 상징하는 문구가 됐다. 시대를 뒤흔든 프리드먼의 <뉴욕타임스 매거진> 기고문의 실제 제목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였다. 이 글은 주주 우선주의의 선언문처럼 통용되었다.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다.
"기업에는 단 하나의 사회적 책임이 존재한다. 그것은 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는 한, 즉 기만이나 부정 없이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경쟁에 참여하는 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원을 사용하고 활동에 매진하는 것이다(There is one and only on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to use its resources and engage in activities designed to increase its profits so long as it stays within the rules of the game, which is to say, engages in open and free competition without deception or fraud.)"
— Milton Friedman,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The New York Times Magazine, September 13, 1970.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는 경영의 표준이 됐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종종 '이윤 추구' 하나로 퉁쳐지는 프리드먼의 이 문장에서 눈여겨볼 표현은 "개방되고 자유로운 경쟁(open and free competition)"과 "기만이나 부정의 배제(without deception or fraud)"이다. 그가 직접 공정(fair)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기만과 부정이 없는 자유 경쟁이라는 그의 전제 조건을 현재 문법으로 해석하면 공정한 시장 질서로 귀결한다.
프리드먼이 당시에는 명시적으로 강조하지 않았으나, 이 전제와 비즈니스의 본질은 비즈니스 그 자체라는 명제를 결합하면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한다. 기만과 부정이 없는 진정한 자유 경쟁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유능한 직원을 붙잡아야 하며, 지역사회의 지지를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속임수 없이 지속적인 이윤을 창출하려는 비즈니스의 본질에 충실할수록, 기업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충실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다. 공정한 시장에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주만이 아니라 전체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 즉 이해관계자 경영으로 수렴하게 된다. 종종 신자유주의의 도입부로 거론되는 프리드먼의 주주 우선주의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결론이 아니라 시장과 사회가 성숙함에 따라 이해관계자 경영이라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하나의 강줄기였다는 새로운 해석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해관계자 경영, 관념에서 표준으로
이러한 논리적 흐름은 1980년대에 이르러 에드워드 프리먼에 의해 체계적인 이론으로 정립된다. 프리먼은 1984년 저서 『전략 경영: 이해관계자적 접근(Strategic Management: A Stakeholder Approach)』에서 기업을 주주의 대리인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조율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허브로 정의했다.
이후 이해관계자 경영은 단순한 경영 이론을 넘어 글로벌 표준과 실천적 지침으로 진화했다. 그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는 2010년 제정된 ISO 26000이다. 기업을 포함한 조직의 사회책임(SR)에 관한 국제 표준(가이드라인)으로, 기업이 단순히 법을 지키는 수준을 넘어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공정운영, 소비자, 지역사회 참여라는 7대 핵심 주제에 걸쳐 전방위적인 책임을 다해야 함을 공식화했다.
이 흐름은 2019년 8월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의 선언으로 이어진다.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등 181명의 CEO가 서명한 이 선언문은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기업의 목적을 "모든 이해관계자에 대한 근본적인 헌신(a fundamental commitment to all of our stakeholders)으로 재정의하겠다"는 규범적 전환을 천명했다. 이 선언은 주주 자본주의에 관한 해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ESG를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경영의 새 시대를 알리는, 명목상이라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 기업의 성과는 재무라는 수치를 넘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재무·비재무적 영향력으로 측정되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요 공간 콩브레에서 '생틸레르의 종탑'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이다. (이미지=챗GPT 생성)
존재의 좌표와 종소리의 본질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 나오는 생틸레르의 종탑은 '마들렌'의 고장인 콩브레의 모든 풍경에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 기준점이다. 화자는 종탑을 통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공동체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확인한다.
"생틸레르의 종탑은 도시의 모든 활동에, 모든 시간에, 도시의 모든 지점에서 바라본 풍경에 각각의 모습과 정점과 성스러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 멀리서 보면 그것은 콩브레 평야 위의 우연한 하나의 돌출물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는 그 평야 전체의 존재 이유이자, 그 모든 것의 요약이었다.(C’était le clocher de Saint-Hilaire qui donnait à toutes les occupations, à toutes les heures, à tous les points de vue de la ville, leur figure, leur couronnement, leur consécration. (...) De loin, ce n'était qu'un accident dans la plaine de Combray ; but il était la raison d'être, le résumé de toute la plaine.)”

—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 Du côté de chez Swann,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87, p. 62-63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정성을 들여 묘사한 생틸레르의 종탑에서 우리 논의를 위해선 '종' 자체와 '종소리'의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금속과 비용은 유형의 자산이며 주주 몫일 수 있다. 그러나 종의 본질은 그 차가운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공기를 흔들며 퍼져 나가는 무형의 '울림', 즉 종소리에 있다. 종소리는 마을 전체로 퍼져 나가 모든 이의 시간을 조율한다. 기업이라는 종탑도 마찬가지다. 자본(종)은 특정 장소에서 조달되지만, 그 울림(가치)은 모든 이해관계자가 숨 쉬는 현장에서 완성된다.
존슨앤존슨(J&J)과 쿠팡이라는 대비되는 두 종탑
이해관계자 경영의 실체는 종탑을 세운 자금의 출처와 종소리가 닿는 현장 사이의 '공명'에서 드러난다. 모범 사례는 과거의 존슨앤존슨(J&J)이다. J&J의 '우리의 신조(Our Credo)'(1943년)는 꽤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종탑 역할을 해왔다. 이 신조는 단순히 종을 주조한 주주의 권리를 말하기 전에, 종소리를 듣는 '고객과 환자'를 최우선으로 배치한다. 우선순위가 명확하다. 고객→직원→지역사회→주주 순이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에서 발생한 타이레놀 독극물 주입 사건 당시 제임스 버크 회장은 주주의 이익보다 신조를 우선했다.
그는 약 1억달러의 손실을 감수하고 미국 전역에서 3100만병의 제품을 전량 회수하는 전례 없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언론과 자본시장은 "우리는 주주의 돈을 쓴다고 느끼지 않았고, 회사의 평판을 쓴다고 느꼈다(I didn't feel like I was spending the shareholders' money; I felt like I was spending the company's reputation.)"는 버크 회장의 발언과 행위에 J&J의 몰락을 예상했으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 말은 말 자체로는 실제 물리적 지출이 '돈'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얼핏 비논리적인 수사처럼 들린다. 평판은 지출의 결과물이지 화폐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학 관점에서 이 문장은 고도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는다. 그는 단기적인 유동 자산(현금)을 소모하여 기업의 영구적 자산인 '평판 자본'의 붕괴를 막는, 즉 자산과 자산의 교환이라는 전략적 정렬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평판을 '지키는 것'이라는 그의 전치(Displacement)된 표현은, 기업의 실체가 숫자가 아닌 '관계의 총체성'에 있음을 꿰뚫어 본 통찰이었다.
당시 그는 "신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것(The Credo is not for us; it's for the public.)"이라는 두고두고 회자하는 경구 또한 남겼다. 그의 메시지가 오늘날까지 이해관계자 경영의 정수로 남았음은 물론이다.
버크 회장의 선택은 위기 관리가 아니었다. 종탑을 세운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행위였다. J&J는 종소리가 닿는 모든 곳에 '안전'이라는 확신을 줬고, 그 무형의 울림은 이후 수십 년 주주들에게 막대한 유형의 보상으로 되돌아왔다. 종소리가 맑아야 종의 가치도 올라간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비즈니스를 실천한 결과다.
반면 쿠팡에서는 종이 주조된 장소와 울리는 장소 사이의 괴리를 관리하지 못해 치명적 불편을 초래했다. 일단 쿠팡은 철 지난 주주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쿠팡의 자본은 202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NYSE)라는 화려한 주물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상장 직후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상회했을 만큼 주조 가치가 막대했고, 그런 만큼 종을 만든 김범석 창업자의 시선은 종소리가 울려야 할 한국의 현장보다는 종을 빚어준 뉴욕의 자본 시장을 향해 있었다.
문제는 종이 울리는 곳은 한국의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의 핵심 동력이 '종을 만든 곳(자금 조달)'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만 집착했다는 점이다.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이름 아래 효율성이라는 금속의 무게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종소리를 만드는 노동자와 종소리가 닿는 지역사회의 정서에서는 끊임없는 파열음을 냈다.
자본을 조달한 곳(뉴욕의 투자자)의 목소리만 듣다 보니, 정작 종소리가 울리는 현장(한국의 이해관계자)의 공기를 읽지 못한 셈이다. 종값은 유형의 숫자로 명확히 보이지만, 종소리는 무형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 금속 자체가 아닌 그 떨림이 종의 핵심이듯, 기업의 핵심 또한 자본의 수익률이 아닌 이해관계자들과 공명이다. 최근 쿠팡이 겪는 잇따른 갈등은 '종을 만든 곳'과 '종소리가 울리는 곳' 사이의 불일치를 이해관계자 경영 관점에서 조화하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다.
쿠팡 사태는 기업이 한국의 이해관계자인 한국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공명하지 못한 결과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쿠팡본사 앞에서 열린 택배노조 쿠팡 규탄대회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해관계자 경영은 현재의 공명
이해관계자 경영은 언제나 현재의 공명이다. 과거의 종소리가 현재까지 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당혹스럽게도 J&J 사례가 전한다. 1982년 발생한 최초의 타이레놀 독극물 주입 사건 당시 버크 회장은 주주의 이익보다 신조를 우선했다. 이 신조는 단순히 종을 주조한 주주의 권리를 말하기 전에, 종소리를 듣는 '고객과 환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한다. 1986년에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으나, 기업의 운명을 걸고 '관계의 총체성'을 선택한 1982년의 결단은 오늘날까지 경영의 교과서로 남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J&J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최근 10여년 이어진 베이비 파우더(탈크) 발암 논란과 오피오이드(진통제) 소송, 그리고 배상 책임을 제한하기 위해 소송 전담 자회사를 파산한 '텍사스 투 스텝(Texas Two-Step)' 전략은 많은 이에게 "과연 현재의 J&J가 1982년의 그 기업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텍사스 투 스텝 전략은 텍사스주 회사법을 활용해 기존 회사를 하나는 '건전 자회사', 다른 하나는 소송·부채 전담 자회사로 분할해 소송 전담 자회사만 파산 신청함으로써 건전 자회사를 통해 영업을 지속하면서 소비자 피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회피한 방식으로,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음은 물론 도덕성과 관련해 지탄을 받았다.
J&J의 과거 종소리가 맑고 숭고했다면, 최근의 행보는 주주 가치 방어라는 성벽 뒤로 숨어버린 종 없는 낡은 종탑의 그림자를 비추는 듯하다. 프루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신조가 현재의 위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비자발적 기억'이 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을 선전하는 도구인 '자발적 기억'으로 박제돼 있는 셈이다.
가치 정렬(Value Alignment)의 마법
이해관계자 경영은 단순히 착한 기업이 되자는 도덕적 훈화가 아니다. 고도의 '전략적 정렬'이다. 프루스트의 종탑이 마을의 모든 '활동'과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듯, 경영자의 목적은 조직의 모든 의사결정과 한 방향으로 정렬돼야 한다.
직원이 회사의 목적에 공감할 때 몰입도가 높아지고(HR 정렬), 협력사가 공정한 파트너십을 느낄 때 공급망의 회복탄력성이 강해지며(SCM 정렬), 고객이 기업의 진정성을 느낄 때 브랜드 충성도가 완성된다(마케팅 정렬). 이 모든 가치가 종탑을 향해 한 방향으로 정렬될 때, 기업은 비로소 '관계의 총체성'으로서 강력한 생명력을 얻는다.
현대 경영은 종탑의 높이를 레이저 측정기로 재듯, 재무 성적은 물론 ESG 지표와 사회적 가치(S-ROI)까지 숫자로 환산하려 애쓴다. 하지만 프루스트가 경고했듯, 지성으로 계산된 숫자는 종탑의 '울림'을 담아내지 못한다. 진정한 이해관계자 경영은 엑셀 시트의 숫자가 아니라, 노동자와 고객을 포함한 기업의 모든 구성원이 종탑의 종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심리적 안전감'과 '공동체적 연대감'에서 완성된다.
[안치용의 Critique: 모두를 위한 종소리]
오늘날 많은 경영자가 ESG라는 이름의 새로운 종탑을 세운다. 하지만 그 종탑이 주주만 입장할 수 있는 폐쇄적인 성벽 안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를 자문해야 한다. 프루스트의 화자가 종탑을 보며 느낀 감동은 그것의 소유주가 대단한 누구여서가 아니라, 그것이 마을 전체의 풍경을 완성하고 개인의 시간을 숭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영자가 세워야 할 종탑은 '이윤의 기념비'가 아니라 '관계의 등대'여야 한다.
투자자의 수익률, 노동자의 삶의 질, 고객의 가치, 환경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하나의 종탑 아래서 조화를 이룰 때, 기업은 비로소 시간의 흐름을 견뎌내는 불멸의 서사를 쓰게 된다. 당신의 종탑은 지금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는가? 그 소리는 마을의 가장 소외된 구석까지 닿고 있는가?
아니라면, 지금 당신의 조직이라는 마을 한복판에 모두가 올려다볼 수 있는 생틸레르의 종탑을 세워라. 그리고 종을 울려 그 소리가 모든 이해관계자의 삶 속에 나타나게 하라.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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