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대미 투자 1호 사업'의 실체가 끝내 공개되지 않은 채, 관세 25% 원상 복귀는 사실상 시간문제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과거 우리 기업이 사업성 문제로 접었던 미국 내 에너지 프로젝트가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원전도 LNG도 아니다…정체 숨긴 '에너지 1호'
5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 측이 요구한 1호 사업은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간 대미 에너지 협력 사업으로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미국 내 원전 건설, LNG 장기 구매 확대 등이 거론돼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한 1호 사업은 이 범주와 무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과거 한국 기업 한 곳이 미국 내 투자 가능성을 검토했다가 사업성 부족 등을 이유로 중단한 프로젝트로, 이번 협상 국면에서 다시 거론됐다는 설명입니다.
미국 측 제안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미국을 방문하기 전 한국 정부에 전달됐고, 지난달 29~30일(현지시간) 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워싱턴에서 회동할 때 구체적으로 논의됐습니다.
당시 김 장관은 미국이 제안한 사업과 별도로 '원전 건설도 한국이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제안에 거리를 두면서 한국이 강점·주도권을 가진 분야를 테이블에 올린 것입니다. 다만 산업부는 미국이 제안한 사업의 성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습니다.
산업부 한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공개 시점이나 방식은 미국과 조율해야 한다"며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엇을 논의하고 있다거나 결론이 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는 "탄소포집·저장(CCS)이나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분야는 한국이 대미 투자 사업을 주도할 만큼 역량을 갖춘 분야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탄소 관리를 에너지·산업 전략의 핵심 축으로 규정하며 CCS·CCUS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회수 기간이 길어 미국 정부 지원 없이는 민간 단독 투자가 쉽지 않습니다.
원전·LNG·CCS 등이 모두 배제된 상황에서, 텍사스 등에서 추진돼온 저탄소 연료 생산 사업이 협상 테이블에 올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텍사스에서는 블루암모니아 등 저탄소 연료 생산을 목표로 한 대형 프로젝트들이 사업성 문제 등으로 중단되거나 보류된 상태입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청정에너지 지원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블루암모니아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하고, 해당 수소로 암모니아를 제조한 저탄소 연료입니다.
실제 국내 기업 가운데서도 미국 내 블루암모니아 사업을 검토했다가 중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포스코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추진되던 블루암모니아 사업에 대해 투자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사업성 등을 이유로 지난해 최종 계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블루수소 프로젝트가 추진되던 텍사스 베이타운 정유공장 전경. (사진=엑손모빌)
특별법 이후 본게임…디지털·투자 양보 '압박'
한·미 후속 협의는 이미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단계를 넘어선 분위기입니다.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4박 5일간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맞상대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를 만나지 못한 채 일정을 마쳤습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조현 외교부 장관에 이은 3번째 빈손 귀국입니다.
여 본부장은 이날 귀국 후 기자들과 만나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는 투자와 비관세 분야가 모두 포함돼 있다"며 "이들 사안은 우리가 이행해야 할 사항인 만큼 마찰로 번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만으로 협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발언입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협상의 본게임이 디지털 규제 완화와 미국이 지정하는 투자 대상 수용 국면으로 넘어갔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내정간섭 논란을 의식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뿐, 온플법과 쿠팡 이슈가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대응 기조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관보 게재 자체를 막기보다는, 실제 관세 발효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분위기입니다. 관세가 발효될 경우 재인하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협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관세가 현실화하면 산업과 기업 피해가 누적되는 가운데, 한국은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추가 양보를 압박받는 구조에 놓이게 됩니다.
세종=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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