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나의 알코올 일지⑩)윤석열 같은 자와는 ‘양막주’를
2026-01-15 15:52:40 2026-01-15 15:52:40
많은 사람이 <스타 이즈 본>이란 영화를 레이디 가가 주연의 2018년도 영화로만 생각하는 건 다분히 그녀가 영화 속에서 부른 노래 ‘우리 모습 이대로 늘 기억할게(Always Remember Us This Way)’ 때문일 것이다. 그 노래가 워낙 인기를 얻었던 탓이겠다. 그러나 올드팬들(아주 노친네들보단 한 60대 정도의 중늙은이들)에게는 1976년 개봉한 영화 <스타 탄생>이 더 먼저다. 매부리코의, 못생겼지만 이상하게도 매력이 있는 여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주연을 맡았고 그보다 더 유명했던(그러나 이후에는 마치 이 영화에서처럼 결국 그저 그런 배우나 가수가 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나왔었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오프닝에서 헬기로 무대에 착륙하면서 부르는 ‘워치 클로즐리 나우(Watch Closely Now)’를 좋아한다. 그 노래에는 가슴에 남는 뭔가가 있다. 영화 속 이름이 존 노만 하워드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영화 속에서 엄청 술을 마신다.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신다. 한마디로 미친 듯이 마신다. 당연히 음주운전으로 스포츠카를 과속으로 몰다 죽는다.
 
무명가수 앨리(레이디 가가)가 톱스타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을 만나 최고의 스타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스타 이즈 본>의 한 장면.(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오프닝에 록 밴드의 반주에 맞춰 인기 가수 노먼은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워치 클로즐리 나우!’라고 소리를 빽빽 지른다. 무대로 내보내기 전, 매니저는 백스테이지에서 그에게 미리 준비해 둔 위스키를 두세 모금 먹인다. 술은 잭 다니엘 같아 보인다. 잭 다니엘은 비교적 싼 위스키이다. 그걸 훌쩍훌쩍 두어 모금 마시면 가슴이 찌르르해질 것이다. 노먼은 그렇게 자신을 약간 알딸딸하게 만든 후, 무대에 나가 전자기타를 쳐 대며 노래를 부른다. ‘워치 클로즐리 나우’는 ‘지금 (날) 잘 봐봐’의 뜻이다. 내가 누리는 이 성공과 자유는 오래가지 않을 거고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지금의 나를) 잘 보라고 그는 노래를 부른다.
 
스타는 불안하다. 성공은 늘 불안하다. 실패는 슬프지만, 성공은 공포스럽다. 성공과 실패 모두 다 사람들을 편집증에 시달리게 하고 강박적인 행동에 빠뜨린다. 이들이 술을 먹는 건 불안해서이다. CF계의 전설(‘열두 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등)인 이지송 감독은 언젠가 고기구이 연탄불 앞에서 매캐한 가스 냄새와 함께 소주 한 잔을 따르며 말했다. “그런 중독 하나쯤 없이 어떻게 스타가 되고 연예인이 되고 하겠니? 예술은 중독에 빠지고 중독에서 벗어나는 그 과정 전체에서 만들어지는 거겠지.” 이지송 감독은 알코올 중독 찬양자(?)이다. 알코올 중독은 사랑 중독을 일으킨다.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그래도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권력과 자본에 중독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권력 맛, 돈맛에 취해 살아가는 트럼프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 알 수가 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스타 탄생>이든 레이디 가가의 <스타 이즈 본>이든 모두 고전 작품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1937년 영화가 있었고 1954년 영화가 있었는데 특히 1954년 판에서는 주디 갈런드가 주연을 맡았다. 스타(갑부)였던 남자는 인기가 폭락하고(재산을 잃고 몰락하고) 무명의 여자는 벼락스타가 돼 인기를 한 몸에 모으게 된다는 로그 라인은 할리우드 멜로영화의 상투적인 스토리이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제니퍼 존스가 나왔던 1952년 영화 <캐리>가 그랬고 무려 60년 후에 미셸 하자나비시우스가 만들어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아티스트>가 그랬다. 남자는 망가지고 술을 마시며 여자를 키우고 그 키운 여자를 질투하며 또 술을 마시다 더 망가지고 그렇게 망가지다 죽는 이야기이다. 신파 중 신파인 이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수십 년간 인기를 끌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폴(브래드 피트)은 '미국산 폭탄주'를 보여준다.(사진=컬럼비아 픽처스)
 
술 마시며 자신을 학대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사랑하는 여자가 ‘잘나고 잘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저런 캐릭터들이 수십 년간 이어져 왔다는 건 그만큼 남성 중심적 사고의 사회 풍조가 계속돼왔음을 보여준다. 바보 같은 X들이다. 여자들이 잘나고 잘되면 좋지 뭘 그걸 시기하는가. 돈은 둘 중 한 명만 벌면 되고 유명해지는 것도 둘 중 한 명, 나머지 한 명은 그림자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게 더 편할 것이다) 술은 편한 마음으로, 상대가 잘되는 걸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마음으로 마시는 것이다. 술값도 사랑하는 사람이 내줄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폭탄주가 마치 한국의 전유물인 듯 착각하는 것도 못난 한국 중년들의 내셔널리즘이다. 원래 폭탄주는 미국산이다. <흐르는 강물처럼>(1992)에서 둘째 아들 폴(브래드 피트)은 자유분방한 성격이다. 그는 종종 바에 홀로 앉아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한잔 탁 넘긴 뒤 차가운 생맥주를 뒤이어 들이킨다. 그다음에 위스키를 한 잔 더 시킨 후 이번엔 맥주에 그걸 퐁당 떨어뜨린다. 자유로운 남자, 하물며 젊고 예쁘게 생긴 남자, 형보다 (형 노먼은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매진하는 등 자신이 집안의 중심이니만큼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자기를 몰아세운다) 일상의 강박이 덜하고 세상사에 크게 욕심이 없는 남자는 술을 맛있게 먹는다. 술은 자유로움의 상징이고 정신적 넉넉함의 상징이어야 한다. 그것을 한국 사회는 경쟁하듯 마셔왔다. 마치 입시 전쟁을 치르듯, 혹은 입사 전쟁을 치르듯 해왔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가까스로 전두환을 무찌른 후 노태우와 김영삼을 거치는 동안 서울 무교동에는 다찌바가 많았다. ㅁ자 형태의 바가 있고 그 안에는 비교적 요염한 초중년 여성이 위스키를 따라 주거나 칵테일 매니저 한 명을 따로 두고 술 시중을 들게 했다. 여자는 이쪽에 한잔 따라주고 웃음을 흘리고 저쪽에 한잔 따라 주고 슬쩍 손을 터치하기도 하며 자신도 가끔 반 잔씩 받아서는 립스틱 짙게 바른 입술 사이로 술을 흘려 넣곤 했었다. 당시에는 위스키라 하면 대개 시바스 리갈이거나 조니 워커 블랙이었을 것이다. (블루는 너무 비싸 언감생심이었고) 버번 중 가격대가 낮은 편인 짐 빔 같은 것을 시키면 마담이 입을 살짝 삐죽였다. 싸구려를 시키다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흔히들 ‘야메손’이라 불렀던 아이리시 위스키 제임슨을 시키면 대우받지 못할 때였다. 제임슨은 40도다. 깡패 술이다. 마시면 깡패가 된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월급날, 마담의 분 냄새를 맡고 싶으면 소줏집에 가지 않고 다찌바를 찾아 호기롭게 외치곤 했다. 잭 다니엘 한 잔 줘요.
 
찰스 부코스키는 잭 콘로이의 책을 읽으며 술을 마셨다고 자신의 책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쓰고 있다.(사진=오동진)
 
당시 사람들은 스카치위스키와 버번위스키의 차이도 잘 모를 때였다. 그런 게 어딨어, 취하면 그뿐.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 사회는 군사 독점 자본주의가 독버섯처럼 사회를 좀먹고 있을 때였고 싸구려 위스키를 화이트칼라층에 뿌려댈 때였다. 본봉보다 접대비가 더 많았던 시대였다. 술의 가치가 값싸게, 그리하여 술 문화가 천박하게 밑을 기어 다니던 때였다.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의 술 문화는 자유보다는 굴종과 억압의 상징이었다. 그때 술을 잘못 배운 인간이 바로 윤석열이다. 그는 술기운에 계엄을 일으키고 그 잘못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 하니 후회와 자책감이 없다. 한국 사회는 술을 잘못 배운 자들, 술이 권력과 돈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망쳐 왔다.
 
찰스 부코스키는 1964년 5월 1일 작가 잭 콘로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차이코프스키 6번 교향곡을 들으며 작은 맥주를 한 병 마시고 있다”라고 썼다. 잭 콘로이가 보내 준 책 『상속받지 못한 자들』을 읽으며 마신 모양이다. 잭 콘로이는 돈이 없는 부코스키를 위해 책을 보내 준 것으로 보인다. 부코스키 주변에는 늘 술병과 주사기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식권을 받는 빈곤층이었음에도 그 식권으로 술을 바꿔 먹곤 했다는 것이다.
 
술, 잭 콘로이 혹은 잭 런던과 같은 프롤레타리아 작가의 책, 그리고 글쓰기가 병행됐던 시대가 있었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중독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중독을 금기시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은 시대로 치닫고 있다. 그 아이러니는 왜 일어나는가. 일단 술을 한잔 마시고 생각해 볼 일이다. 만약 당신이 만나는 사람 중에 말을 섞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그와 대작할 일이 있다면 소개해줄 술이 있다. 영화감독 장윤현(<접속> <텔 미 썸딩> 등)이 개발한 술이다. 일명 ‘양막주’로 부른다. 막걸리에 양주를 폭탄주 비율로 탄다. 이때 잔은 맥주잔으로 하는 게 좋다. 평균 4잔 이상을 못 마신다. 축구를 후반전까지 보지 못한다. 빨리 술자리를 파하고 싶다면 이 양막주를 먹여 보기 바란다. 그런 상대들이 점점 늘어나는 시대일 테니까.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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