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주가 급등과 원화 약세의 ‘이례 현상’, 과학과 선동의 갈림길
2026-01-13 09:00:00 2026-01-13 09:00:00
지난 1년간 코스피는 2400p 수준에서 4500p 수준으로 대략 80% 급등했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초중반에서 1450원 안팎으로 상승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면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어 원화 가치가 강해지고 원·달러 환율은 하락하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상식임에도, 코스피 지수 상승과 원화 가치 약화가 공존하는 ‘이례 현상’(anomaly)이 지속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낯선 현상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설명되지 않는 데이터가 등장했을 때, 현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권과 언론은 지금의 ‘이례 현상’을 ‘잘못된 이념의 합작품’으로 규정하며 공격의 수위를 높인다. 그들은 “정부의 친중·반미 노선이 대외 신뢰를 무너뜨렸고, 반기업·반시장 규제가 성장 동력을 꺾어 자본 유출을 불렀다”고 성토한다. 여기에 소비쿠폰 같은 포퓰리즘성 확장 재정까지 더해져, 결국 ‘코스피 급등 속 원화 폭락’이라는 비정상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그들의 확고한 믿음이다. 팩트가 필요한 자리에 확증 편향이, 분석이 필요한 자리에 진영 논리와 믿음이 들어섰다. 이는 현상을 규명하려는 과학적 태도가 아니라, 복잡한 다층적 원인을 ‘정부의 무능’이나 ‘잘못된 이념’이라는 단 하나의 ‘정치적 악’으로 환원하려는 게으른 태도다.
 
사실 경제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면, 이 현상에는 건조한 인과관계가 있을 뿐 악당은 없다. 대부분의 경제 분석은 이 현상을 미국 연준의 고금리 기조로 인한 한·미 금리차와 강달러, 반도체 호조에 가려진 비반도체·내수 부문의 상대적 부진, 개인·연기금 등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 선호 확대에 따른 자본 이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즉, ‘이례 현상’은 누군가의 도덕적 타락이나 정책적 죄악이 아니라, 글로벌 거시 변수와 국내 산업구조가 맞물려 돌아간 결괏값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치와 언론은 이 방정식을 비틀어 정권을 찌르는 칼로 쓴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반지성적인 태도는 행동경제학의 태도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행동경제학의 거장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와 그의 동료들이 경제학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설명되지 않는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이 합리적 인간 모델에 맞지 않는 현상을 ‘오류’나 ‘잡음’이라며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할 때, 행동경제학자들은 관련 데이터를 집요하게 들여다보았다. 이론과 어긋나는 현실의 데이터, 곧 ‘이례 현상들’(anomalies)을 마주했을 때 그들은 “데이터가 잘못됐다”고 현실을 탓하기보다 “우리의 모델에 뭔가 빠져 있다”며 이론을 의심하는 쪽을 택했다. 이론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외면하거나 억지로 맞추는 게으른 길 대신, 현실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지적 틀을 수정·확장하는 고단한 과학의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제한된 합리성’과 심리적 편향을 반영한 새로운 인간관이 경제학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경제학의 분석 범위와 지평은 크게 넓어졌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 (사진=뉴시스)
 
행동경제학에서 ‘이례 현상’은 학문을 진화시키는 귀중한 ‘단서’였지만, 한국 정치에서 ‘이례 현상’은 상대를 악마화하는 ‘빌미’일 뿐이다. 연구자는 데이터가 이론과 충돌할 때 호기심을 갖지만, 선동가는 데이터가 믿음과 충돌할 때 분노한다. 지금 우리의 공론장은 호기심은 죽고 분노만 남은 난장(亂場)이다.
 
다시 한국의 외환시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지금 목격되는 주가와 환율의 괴리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경제의 작동 원리가 과거와 달라졌음을 알리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과거 외환시장을 좌우하던 외국인에 더해 국민연금과 ‘서학개미’가 수급 및 심리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AI 반도체’라는 특정 섹터로의 쏠림이 지수의 착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환경이 바뀌고 행위자의 구성이 진화한 것이다. 
 
세일러에게 '이례 현상'은 경제학의 혁신을 가져오는 통로였다. 반면 지금 우리 사회 일부에서 이 현상은 상대를 찌르는 칼날이자 혐오의 땔감으로 소모되고 있다. 과학은 질문을 던져 답을 찾지만, 낡은 정치와 낡은 언론은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묵살한다. ‘주가 급등과 원화 약세’의 기묘한 공존 앞에서, 분노를 동력으로 삼는 파멸적 선동의 소음을 걷어내고 변화된 현실의 과학적 분석에 진지하게 임하려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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