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평 기자]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노사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후 첫 임원 인사에 부산 이전을 추진한 인물을 내정하면서 노조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취임한 지 3개월 만입니다.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총액인건비제도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지 못해 노조와 대립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국책은행 수장들이 리더십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6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산업은행 노동조합에 따르면, 김현준 산은 노조위원장은 단식 5일째인 이날 오전 건강 이상 증세로 병원에 이송됐습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노조 집행부 측은 "김 위원장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박 회장이 노조가 반대하는 임원 인사를 강행할 경우 농성은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단식 농성의 배경은 박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하는 정기 임원 인사입니다. 박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과거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주도했던 인사 2명을 각각 수석부행장과 부행장으로 내정했습니다. 노조는 조합원 1757명이 참여한 경영진 평가 및 차기 부행장 적합도 설문조사에서 해당 인사들이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는 결과를 사측에 전달했지만, 사측은 이를 인사에 반영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날 박 회장은 노조 측에 직원들의 의견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전하며 한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노조위원장이 단식 농성까지 돌입하자, 산은 안팎에서는 박 회장의 리더십이 취임 3개월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금요일 1시간 조기퇴근제 도입도 산은 노조의 요구 사항입니다. 박 회장이 임원 인사를 철회하지 않고 조기퇴근제 도입만 수용할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노조 관계자는 "오히려 금요일 조기퇴근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낮다"면서 "노조 요구가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회장 거취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2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 설치된 김현준 산은 노조위원장의 단식 농성장. 김 위원장은 이날 병원에 이송됐다. (사진=뉴스토마토)
기업은행 노사 갈등도 격화하고 있습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29일 총파업 결의대회를 가지고 내년 1월 중 총파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난해에도 기은 노조는 총액인건비제도에 따른 수당 지급 문제로 총파업을 벌였으나, 갈등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기은 노조는 김성태 기업은행장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입장인데요. 이에 내달 초 임기 종료를 앞둔 김 행장이 불명예스러운 퇴임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총액인건비제도는 관공서나 공공기이 사용할 급여·상여·복리후생비 등 인건비 총액에 대한 연간 한도를 설정해놓는 제도입니다. 기은은 해당 제도에 따라 매달 직급별로 3급 11시간, 4급 이하 13시간 이내 범위에서 시간외수당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이를 초과한 경우에는 수당이 아닌 보상휴가로 대체해왔습니다.
노조는 현실적으로 대체된 보상휴가를 모두 소진하기 어려운 만큼 초과근무에 대해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사측은 총액인건비제도 한도 때문에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앞서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19일 금융위원회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시중은행과의 임금 격차가 30%에 달하고, 시간외수당이나 연차 보상 등을 총액인건비 한도 때문에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자체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시간외근무를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효과가 크지 않다"며 "총액인건비 한도에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정해놓은 총액 한도 때문에 돈이 있어도 못 주는 산하 공공기관이 기업은행 말고도 몇 군데 있는 것 같다"며 "법률을 위반하면서 운영하도록 정부가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 같으니 정책실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습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총액인건비제도 개선이 핵심 쟁점인 만큼, 은행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노조 관계자는 "김 행장이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총액인건비제도 개선에 대해 노조와 동일한 요구를 해달라는 것"이라며 "총파업 결의대회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17일 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최종 무산되자 기업은행장실 점거 농성에 들어가 김성태 기업은행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기업은행 노동조합)
김지평 기자 jp@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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