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만 100조대 유동성 공급…환율·물가 '비상'
2025-12-19 13:56:18 2025-12-19 15:52:28
[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금융당국이 최근 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100조원 이상 규모로 운용 중인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연장해 '상시 안전판' 역할을 이어가겠다 밝혔지만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환율이나 물가 상승 압박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채권·PF 시장 100조 지속 공급"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금융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시장 전문가들과 함께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시장 상황을 엄중히 주시하고 있으며, 필요시 시장 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선제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당국이 다시 한번 강한 안정 메시지를 낸 셈입니다.
 
회의 참석자들은 내년 한국 경제가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에 힘입어 1% 후반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국내 금융권 역시 자본 적정성과 손실흡수능력이 양호해 과거와 같은 심각한 금융 불안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통화정책 완화 기조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주요국 정책 방향이 엇갈리면서 글로벌 자금 이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은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습니다. 특히 원·달러 환율 상승과 관련해 시장 기대심리 관리와 함께 외화 수급 불균형 해소, 경제 체질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100조원 이상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내년에도 연장 운용하기로 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올해 비우량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등 약 11조8000억원을 매입하며 채권시장 안정에 나섰고, 내년에도 채권 및 단기자금시장 안정을 위해 최대 37조6000억원의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연착륙을 위해서는 최대 60조9000억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을 지속 운영한다는 방침입니다.
 
실제 외환·채권시장은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월평균은 1470원을 상회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국고채 금리 역시 연중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대외 여건 변화가 국내 시장 변동성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에너지와 원자재, 곡물 등 주요 수입 품목 가격이 달러로 결제되는 구조상 환율이 오를 경우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이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큽니다. 환율 상승이 단순한 외환시장 이슈를 넘어 물가 변수로 작용하는 이유입니다.
 
이 같은 물가 압력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검토하더라도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물가 자극과 인플레이션 재확대 가능성이 남아 있을 경우 정책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입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한은의 완화적 통화정책 전환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에서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이어질 경우 물가 안정과 통화정책 간 균형을 맞추는 일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환율 관리와 물가 안정이 동시에 요구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간 정책 공조의 중요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국민 부담 이어져…공급 과잉 경계"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의 100조원대 유동성 공급 조치는 채권·CP 시장 안정화에 필수적인 조치이지만 공급 규모가 과도할 경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시장 상황을 보며 점진적인 축소 전략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환율 측면에서는 복합적인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 교수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은 국내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원화 약세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면서 "외화 유동성 규제 완화와 맞물릴 경우 달러 공급 증가로 단기적인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는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확장 재정 기조와 결합될 경우 해외 자본 유출 압력을 높여 중장기적으로는 환율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가에 대한 부담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입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75%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국가이기에 충분한 달러 비축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원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수입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곧 국민 물가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책 조율과 모니터링이 관건이라고 강조합니다. 서 교수는 “환율 측면에서는 달러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과도한 원화 강세를 막는 동시에 변동성 관리가 중요하고, 물가 측면에서는 공급 측 압력 약화 여부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시장 안정 조치가 지속되는 동안 유동성과 M2 간 연동 관계, 환율 변동성 지표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는 "환율을 억지로 누르려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안정성 높은 정책이 필요하다"며 "환율 정책에 메시지를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외환·금융시장 대응 수단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금융당국이 100조원 이상 규모로 운용 중인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내년까지 연장해 사실상 '상시 안전판' 역할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과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 거리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 시세가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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