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던 지역보건의료기관의 법·제도 공백 등 지역보건의료 체계에 대한 균열을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지역의사제'를 연내 도입하겠다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출발점인 지역보건의료체계의 역할·권한·운영 기준 자체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지역 주민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지역보건의료기관에 대한 법·제도적 공백으로 체계적 관리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일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을 보면, 현행 전국 시·군·구에는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보건의료원 등 다양한 유형의 보건의료기관이 혼재해 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지역 보건의료, 제도적 불명확성·관리 공백
20일 국회입법조사처 분석을 보면, 현행 전국 시군구에는 보건소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보건의료원 등 다양한 유형의 보건의료기관이 혼재해 있습니다. 기관별 법적 정의는 모호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통합 지침도 부재한 실정입니다.
특히 보건진료소와 관련해서는 제도적 불명확성·관리 공백을 지적합니다. 보건진료소는 '농어촌의료법'에 따라 설치·운영되고 있지만 '지역보건법'상 지역 보건의료기관에 포함되지 않아 제도적 지위가 불명확한 상태입니다. 1980년대 농어촌 보건정책의 잔존 형태로 남아 있을 뿐, 법상 명확한 운영 기준이 없어 인력 구성과 기능 배치를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입니다.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의 운영에 관한 지침이 없고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둘러싼 기능 개편 논의는 진전이 없는 상태입니다. 보건지소·건강생활지원센터 운영에 대한 책임과 한계도 꼬집고 있습니다. 보건지소·건강생활지원센터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하는 등 조직, 인력 배치·운영 책임이 지자체에 있습니다.
광역 지자체는 지역보건의료 사업 수행 체계 내에서 중앙 정부 예산 전달 통로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초 지자체는 인력 및 예산 부족 등으로 인해 지역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20일 한진옥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보건복지부 내 공공 일차의료 전담 부서 설치를 시작으로 공중보건의와 보건진료전담공무원을 포함한 보건진료소의 구성·운영에 관한 제도적 보완과 법 개정 방향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최후의 보루'…복잡한 파편화
보건의료원에 대한 구조적 제약과 지원 부재도 지목됩니다. '지역보건법'에 근거한 보건의료원은 '의료법'에 따른 병원의 요건을 갖춘 보건소를 말합니다. 의료 취약지에서 병원 기능을 수행하는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전국 보건의료원은 평균 9.7명의 의사와 6.7개의 진료 과목을 갖추고 있습니다. 9개소는 30병상 이하의 입원실을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진료 인프라에 머물러 있습니다.
병원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여러 구조적 제약이 존재하다는 얘기입니다. 지역 의료 인력에 대한 불균형 해소가 제시되고 있지만 출발점이 되는 지역의료기관의 역할·권한·운영 기준 자체가 현행법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복잡하게 파편화돼 있는 겁니다.
이는 정부 예산 지원 체계의 일관성 부재로 이어집니다. 같은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임에도 지역 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현재 논의 중인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사 전형 선발로 등록금·교재비·기숙사비 등 학업 비용과 특정 지역의 의무 복무를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복무 명령 미이행 시 면허 취소까지 고려하는 등 올해 정기국회 내 법안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의료계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문제는 이 논쟁 중심에 지역보건체계의 근본적 해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역의사제는 공급 인력 확보에 초점을 맞춘 제도이나 정작 이들이 일하게 될 지역병원·보건소·보건지소·공공의료원의 기능과 권한은 여전히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필수의료 공백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는 지역병원의 인력난과 경영난, 보건소의 급성기 진료 기능 부재, 보건지소·진료소의 역할 혼재 문제는 법적 정비와 운영 체계 재설계가 필요한 핵심 요체로 지목됩니다.
보건소의 기능에 해당하는 건강증진사업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의 '지역보건의료계획 수립 지침',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 지침' 등이 있지만 병원 기능과 관련해 법적 규정이 불분명하다는 점도 꼽았습니다.
중앙정부의 평가와 지도체계뿐 아니라 광역자치단체 또한 보건의료원을 위한 지원이나 평가체계를 가지지 않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보건진료 전담공무원 1인 체계로 운영되는 보건진료소로서도 인력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주소입니다.
지난 9월17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공동파업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도적 보완·법 개정 논의 서둘러야"
한진옥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복지부 내 '공공 일차의료' 전담부서 설치를 시작으로, 보건지소·보건진료소 재구성을 통해 공공 일차의료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보건진료소를 '지역보건법' 체계로 편입시켜 보건지소와 통합 운영할 경우 보건진료 전담 공무원의 '경미한 의료 행위' 허용 여부가 쟁점이 된다. 제도적 보완과 법 개정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인구 감소 지역의 보건소를 의원급 '지방의료원'으로 지정해 공공의료체계에 편입시키는 방안도 제시된다. 건강정책과와 공공의료과 차원에서 보건의료원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면서도 "현재 지방의료원이 종합병원급이 대부분이고 만성 적자에 직면해 있어 전환 지정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정부는 지역 의사제 신설과 공공의료 사관학교 설립 등을 통해 지역·필수·공공 의료 인력 양성 계획을 추진 중"이라며 "양성된 인력의 효과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해 복지부 내 어느 부서가 담당할지 준비가 필요하며 지역 의료 서비스 위협에 대응, 일차 지역·공공 의료의 최전선을 강화할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5월25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구급대원들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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