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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1일 11:06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이른바 '캐즘' 구간이 장기화되면서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에 힘을 싣고 있다. ESS는 탄소중립 실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안정화 등 정책·산업적 수요가 맞물리며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지닌 분야로 평가받는다. <IB토마토>는 이번 기획을 통해 ESS 시장에서 배터리 3사가 펼치는 사업 전략과 기술·안전 과제, 글로벌 경쟁 구도, 그리고 재활용·재사용을 포함한 미래 생태계의 변화를 집중 조명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권영지 기자] 국내 배터리 3사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북미 중심의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안정성과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며 ‘확장형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삼성SDI(006400)는 고신뢰·고밀도 셀을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을 선점하는 ‘기술 중심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반면 SK온은 EV와 ESS 셀의 호환성을 기반으로 생산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실용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세 회사 모두 전기차 중심의 성장 한계를 넘어 ESS를 통해 수익 구조를 재편하고 시장에서의 우위를 재정립하고 있어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4 세계 태양에너지 및 세계 배터리&충전 인프라 엑스포에 전시된 ESS의 센서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분기 ESS 수주 잔고,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
11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3사는 각기 다른 ESS 전략을 펼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ESS 시장을 ‘제2의 성장축’으로 정의하고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3분기 ESS 수주 잔고는 약 50GWh 수준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특히 미국 주택용 ESS 기업과 6년간 13GWh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장기 매출 기반을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특히 미국 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생산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말까지 17GWh, 2026년에는 30GWh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캐나다 스텔란티스 합작법인(JV) ‘넥스트스타 에너지’의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북미 외에도 유럽·호주 등으로 수주 영역을 넓히며 글로벌 ESS 공급망을 확장하고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LFP 배터리 채택과 함께 소프트웨어 기반 배터리관리시스템(BMS), 화재 대응 기술을 고도화해 ‘안정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강화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CES 2025’에서 소프트웨어 기술로 처음 혁신상을 수상하며, AI·빅데이터 기반의 BMS로 배터리 수명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서비스형 비즈니스(BaaS) 모델로 확장 가능성도 확보했다.
삼성SDI는 ‘프리미엄 ESS 시장’에 집중하며 고신뢰·고안정성 셀을 앞세워 차별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ESS 수주 확대 기대감에 따라 회사는 북미와 유럽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은 “내년에도 AI 산업 성장과 친환경 발전 확대에 따라 ESS 수요가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SDI는 미국 현지 생산 체계를 강화하며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SPE)에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기반 ESS 배터리 라인을 본격 가동했다. 국내에서도 올해 1차 중앙조달 ESS 시장에서 약 76%의 수주 비중을 확보했다.
회사는 연말까지 미국 내 LFP 생산라인 전환을 완료하고 연간 3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헝가리 공장을 중심으로 유럽 프리미엄 ESS 시장을 공략하며, ESG 인증과 인허가 강화 추세에도 대응 중이다.
기술적으로는 각형 배터리를 기반으로 고에너지밀도·장수명 ESS 셀을 개발 중이다. 회사는 CES 2025에서 ‘탭리스 실리콘 나노복합 음극재’를 적용한 차세대 셀로 최고 혁신상을 수상하며, 에너지밀도를 2배 높이면서도 안전성을 확보한 제품 성능을 선보였다. 삼성SDI는 이를 통해 프리미엄 ESS 시장 내 경쟁 우위를 강화하고, 향후 BMS 및 화재 대응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고신뢰 셀 패키지’로 완성도를 높일 계획이다.
SK온은 전기차와 ESS 셀 간 호환성을 무기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EV 라인을 ESS로 전환해 생산비를 줄이고, 동일 셀 플랫폼으로 재활용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주 SK배터리아메리카 공장의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내년 하반기부터 LFP 배터리를 본격 생산할 예정이다.
SK온은 플랫아이언 에너지 등 북미 주요 고객사와 LFP 기반 ESS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최대 10GWh 규모의 신규 수주를 협의 중이다. 서산 공장 역시 EV 생산라인 일부를 ESS 전용으로 전환했다. 국내에서는 정부 주도 2차 ESS 중앙계약 시장에도 참여하며 내수 기반을 다지고 있다.
SK온은 또 LFP 기반 셀을 주력으로 삼으면서도 ESS용으로는 화재 대응 및 소프트웨어 BMS 기술을 강화해 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동시에 EV 셀을 ESS로 전환할 수 있는 모듈 구조를 유지해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호환 플랫폼은 향후 유럽·호주 시장 진출에도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LG엔솔 ‘확장형’·삼성SDI ‘프리미엄’·SK온 ‘실용형’ 전략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ESS 전략은 각각 시장 포지션과 기술 지향점에서 뚜렷이 갈린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규모의 경제’와 안정성을 중심으로 북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수주 전략은 단기간 수익성보다는 장기 성장 기반 구축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안정적 현금흐름 확보 측면에서 우위를 가진다. 다만 LFP 중심 구조가 고에너지밀도 시장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 있어, 고성능 제품군 다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삼성SDI는 ‘프리미엄 기술’ 중심 전략으로 시장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각형·NCA 셀을 기반으로 고신뢰·고밀도 ESS 솔루션을 제공하며, 단가가 높은 대신 수익률이 높다. 특히 유럽 시장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인증, 안정성 기준에 부합하는 고부가 제품을 통해 브랜드 신뢰도를 강화하고 있다. 다만 프리미엄 중심 포트폴리오는 가격 경쟁이 심화될 경우 시장 확장 속도가 느릴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SK온은 ‘효율과 실용성’ 중심 전략으로 후발주자의 입지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EV·ESS 셀 호환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생산비를 절감하고, LFP 채택으로 원가 구조를 단순화했다. 이는 시장 진입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개선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기술 차별성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해, 중장기적으로는 안정성 검증과 대형 수주 확보가 필수 과제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확산 등으로 ESS 수요가 급증하면서 내년 글로벌 시장 규모는 300GWh를 돌파할 전망이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비중국산 원가 비중 60%’ 규제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공급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ESS가 EV 시장 수요 둔화를 메울 ‘포스트 EV’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한국 배터리 3사의 각기 다른 전략은 향후 시장 판도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ESS 시장은 단순히 전기차 수요를 메우는 보조 사업이 아니라, 배터리 기업의 기술력과 사업 구조 재편, 새로운 경쟁구도를 만드는 영역"이라면서 "각 사가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얼마나 빠르게 시장의 요구에 맞춰 기술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전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초기 대응 속도가 향후 점유율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권영지 기자 0zz@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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