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혜정 기자] 국내 조선·방산 산업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을 전망입니다. 오는 27일 열리는 ‘APEC 퓨처테크 포럼’에 HD현대와 한화가 각각 조선·방산을 대표해 참가합니다. 두 기업은 포럼에서 각국 정상과 글로벌 기업 리더를 상대로 혁신 기술과 미래 전략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도 막바지 수주전을 치르고 있는 만큼, 정상외교와 연계한 조선소 현장 방문 유치 등 물밑 세일즈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오른쪽)와 K10 탄약운반차(왼쪽). (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역내 경제 협력과 공동 번영을 논의하는 연례회의인 ‘APEC 정상회의’가 오는 31일에서 다음 달 1일까지 진행됩니다. 이에 앞서 28일부터 31일까지는 회원국 비즈니스 리더들을 위한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개최됩니다. 이 자리에서 기업 리더들 간 교류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협력 관계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번 서밋에는 APEC 21개 회원국 가운데 정상급 인사 16명과 글로벌 기업 CEO 17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HD현대, AI·탈탄소 솔루션 등 소개
22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27일 HD현대와 한화가 조선·방산을 대표해 APEC 퓨처테크 포럼을 주관할 예정입니다. 퓨처테크 포럼은 APEC CEO 서밋의 공식 부대행사로, 7개 미래 주력 분야를 주제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업계 관계자는 “서밋에서 각국 정상·CEO 간 비즈니스 미팅 기회가 열리는 만큼, 포럼을 통해 기업의 역량과 향후 사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HD현대는 경주 엑스포대공원 문무홀에서 포럼을 열고, 글로벌 조선업 전문가들과 함께 ‘조선업의 미래를 설계하다(Shaping the Future of Shipbuilding)’를 주제로 미래 조선업의 발전 방향과 기술 혁신을 논의합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AI, 탈탄소 솔루션, 제조 혁신 등 회사가 이끄는 핵심 기술을 소개하고, 방산 분야 중심의 글로벌 조선 협력 비전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HD현대의 주요 파트너인 헌팅턴 잉걸스, 안두릴, 미국선급(ABS), 지멘스, 페르소나 AI 등의 주요 인사들도 포럼 연사로 참여하며 협력 관계를 강화할 전망입니다.
한화그룹 방산 3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오션·한화시스템은 경주 국립 경주박물관에서 국내외 군 및 방위산업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K-방산 경쟁력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미래 도전에 대응하는 방위 혁신 솔루션 △변화하는 전장과 부상하는 기술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 전력 세 가지 주제로 포럼이 진행될 예정이며, 이 자리에 김동선 한화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HD현대중공업 울산 야드. (사진=HD현대중공업)
해외 정상들의 현장 방문 여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PEC 참석을 위해 29~30일 방한할 예정입니다. ‘마스가’ 프로젝트 추진에 한·미 협력이 필요한 만큼 이 기간에 국내 조선소를 방문할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MRO) 사업을 수주한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은 APEC 개최지인 경주와 인접해 있습니다. 현재 대통령실과 미국 백악관 실무진이 이들 조선소 방문 일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화그룹, K-방산 미래 전력 홍보
카니 캐나다 총리의 방한에도 이목이 집중됩니다. 캐나다는 최대 60조원 규모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 ‘CPSP’를 추진 중이며, 현재 최종 후보는 한국과 독일로 압축됐습니다. 한국은 ‘원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장보고-Ⅲ 배치-Ⅱ’ 모델을, 독일은 TKMS의 212CD 모델을 내놓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수주에 성공하면 이들 기업은 향후 수십 년간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하게 됩니다. 또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가 독점해 온 잠수함 시장에서 한국 기술력이 공인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카니 총리는 지난 8월 독일 킬의 TKMS 조선소를 방문하며, “올가을에는 한국 조선소도 직접 방문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이번 방한에서 조선소 방문이 성사될 가능성이 큽니다. 양국 모델은 군사적 요건을 통과한 상태로, 현재 기술 이전과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효과를 놓고 마지막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협상이 중요한 단계이니 만큼, 최종 결정권을 쥔 카니 총리를 겨냥한 총력 세일즈가 예상됩니다.
이 밖의 APEC 회원국들에서도 한국 방산·조선의 수주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은 말레이시아·태국 함정 사업에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2035년까지 약 350억달러(약 48조원)를 투입해 다목적 전투기·호위함·미사일 체계 등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는 계획을 승인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방산 큰손’으로 부상한 필리핀을 향해 한국 기업들의 세일즈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APEC에서 기업이 직접 할 수 있는 세일즈는 제한적으로, 핵심은 정상회담”이라며 “우리 방산 수출이 폴란드 비중 46%에 의존하는 만큼,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방산 4대 강국’ 달성을 위해 이번 행사를 계기로 국가 간 협조를 통한 수출국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박혜정 기자 sunright@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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