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데스크칼럼)'안정' 잃은 스테이블코인, 제도 공백이 부른 불안
하루 새 7배 폭등…환율보다 5% 이상 비싸
수요 급증에 공급 막혀…시장 구조 취약성 노출
2025-10-15 09:43:44 2025-10-15 09: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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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가상자산이라 여겼던 스테이블코인이 흔들린다. ‘스테이블(stable)’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가격 왜곡이 극심하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대표적 달러 연동 코인인 테더(USDT)가 1500원대에 거래되는가 하면,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하루 만에 7배 가까이 폭등하는 사례도 포착됐다. 원·달러 환율과 괴리된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인 '가격 안정성'마저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전경(사진=연합)
 
불씨는 미·중 무역갈등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발언으로 해외 거래소의 가상자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국내외 가격 차가 벌어졌다. 외환시장 불안이 커지자 달러 대체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급증했고 공급 병목이 맞물리며 가격이 급등했다. 실제 업비트에서 USDT는 지난 10일 장중 1655원까지 치솟았고, 이후에도 1500원대를 유지했다. 같은 시각 원·달러 환율(1425.8원) 대비 5% 이상 높은 수준이다.
 
해외 가상자산 선물시장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도 김치 프리미엄을 자극했다. 해외 거래소 가격 급락으로 청산 위험이 커지자 국내 투자자들이 원화로 테더를 매수해 증거금을 보충하려는 수요가 몰렸다. 이 과정에서 거래소 간 유동성 불균형이 커지고 순간적인 가격 왜곡이 발생했다. 김치 프리미엄은 단순한 가격 괴리를 넘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유동성 구조와 트레이딩 인프라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가격 괴리’ 이상의 위험 신호라는 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가치와 1:1로 연동돼야 하지만, 지금처럼 급등락이 반복된다면 투자심리는 물론 시장 전체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더욱이 글로벌 정세 불확실성과 환율 압박이 겹치면 변동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여전히 한걸음 뒤에 있다. 이미 거래가 한창인데 이제서야 제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 정부 내부 논의를 통해 추진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이 먼저 움직이는 현실에 뒤늦게 따라가는 격이다.
 
이제는 제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관리할 규제 체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발행 주체와 담보 자산 규모, 유동성 관리 방안, 환매 조건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금융당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의 김치 프리미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힌 만큼 실질적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도 활발하다. 일부에서는 민간 기업이나 은행이 원화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이 모델이 현실화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자본 유출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자유롭게 전환된다면 오히려 자본 유출이 더 쉬워질 수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외환시장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도 존재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통화정책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거래소 간 가격 격차 해소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외환 송금 규제 완화, 거래소 간 연계 강화 등 시장 구조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해외 거래소와 연동 허용, 송금 절차 간소화 등을 통해 김치 프리미엄의 구조적 요인을 완화할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 또한 거래소 간 연결성과 외환 자유도를 높여야 시장이 정상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투자자 보호 장치도 필수다. 가격 급변에 취약한 스테이블코인 거래에 대해서는 마진 제한, 손실 제한 주문, 강제 청산 기준 강화 등 리스크 통제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 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제도와 현실의 간극 속에 서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안정'을 내세운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제도 공백이 클수록 시장은 불안에 흔들린다. 제도적 기반과 함께 발행·유통·거래 전 단계의 관리체계가 정비돼야 한다. 자칫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 투자자들만 상처 입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유창선 금융시장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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