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조지아 사태와 제국의 몰락
2025-09-11 14:14:22 2025-09-11 15:05:56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구금 사태는 한미 경제 협력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세운 배터리 공장은 미국이 요구한 대규모 투자 유치의 대표적 성과로 꼽혀왔다. 수천 명의 고용 창출과 막대한 자본 투입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의 실질적 성과라며 대내외에 과시하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바로 그 현장에서 미 이민 당국의 단속으로 한국 기술자들이 범죄자처럼 수갑과 족쇄에 묶여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미국 대외정책과 경제 전략이 지닌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질서의 설계자였다. 마셜 플랜으로 전후 유럽을 재건했고, 자유무역 체제를 구축하며 국제기구와 동맹을 통해 민주주의와 개방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리더십은 패권을 넘어 도덕적 권위와 국제적 신뢰를 쌓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는 과거의 지도력과 정반대의 궤적을 그린다. 이번 조지아주 사태에서 드러났듯, 미국은 자본을 환영하지만 그 자본을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닫고 있다. 한국 기업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를 강요하면서, 정작 이 공장을 가동할 핵심 기술 인력에겐 취업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체류 문제에 걸린 숙련 인력이 희생양이 된 이유다. 
 
투자와 노동, 자본과 사람의 유기적 연계를 무시하는 이러한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대중 영합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경쟁력과 국제적 신뢰를 스스로 갈아먹는 자해행위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한국과 같은 동맹국 기업들에게 뼈아픈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들의 돈은 필요하지만, 당신들은 원치 않는다.” 이러한 태도가 반복된다면 어떤 동맹국이 미국을 믿고 전략적 투자를 지속할까. 트럼프는 미국을 글로벌 투자처가 아니라 ‘돈 빨아들이는 나라’로 전락시키고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공개한 현대차-LG엔솔 이민 단속 현장. (사진=ICE 영상 캡처)
 
트럼피즘은 경제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문과 언론, 집회의 자유 제약과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 등 트럼프가 보여준 퇴행은, 미국 민주주의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전후 80년간 쌓아온 민주주의 리더십이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을 넘어선다. 미국의 후퇴는 권위주의 국가들의 부상을 촉진하고, 동맹국들의 불안감을 키운다.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가 지적했듯, 미국의 고립주의가 민주주의 전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조지아주에서의 이번 단속은 그 흐름의 축소판이다. 투자 유치를 자랑하던 미국이 이제는 투자자 기업의 기술자들을 불법 체류자로 몰아붙이는 장면은, 세계가 한때 믿었던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이 얼마나 퇴락했는지를 웅변한다. 하나의 해프닝이 아니라, 21세기 제국의 몰락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건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미국이 여전히 동맹으로서 믿을 만한 파트너인가’라는 물음을 일깨운다. 한국 기업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는 동안, 한국 엔지니어가 불법체류자로 취급받는 현실은 동맹국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안보 파트너이자 최대 시장 중 하나다. 그러나 자본과 무기의 교환 만이 아닌, 사람과 가치가 교류할 때 진정한 동맹이 가능하다는 점도 엄연하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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