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프랑스를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 재정 중독에 빠지면 벗어나기 참 어렵구나', '재정 포퓰리즘의 단맛에 취하면 저렇게 되는구나'부터 시작해서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한국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등으로 마무리된다. 불어난 나랏빚을 줄이려 하다가 오히려 쫓겨난 프랑스 총리의 얘기다.
프랑스 하원은 지난 8일(현지시간) 내각 신임 투표에서 찬성 194표, 반대 364표로 프랑수아 바이루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켰다. 바이루 총리는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를 해소하겠다며 긴축 재정을 선언했지만, 야당의 반발에 물러서게 됐다. 프랑스 헌법상 내각은 하원 재적 의원 과반수의 불신임을 받으면 즉각 사퇴해야 한다. 전임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긴축 재정안을 내놨다가 3개월 만에 물러난 데 이어, 바이루 총리 역시 9개월 만에 총리직을 내려놓게 됐다.
바이루 총리는 공휴일을 이틀 폐지하고, 내년 재정적자를 440억유로(약 71조6700억원) 줄이는 긴축 예산안 통과에 총리직을 걸었다. 국내총생산(GDP)의 6%에 육박하는 재정적자를 오는 2029년까지 3% 아래로 줄이려는 조치였다. 실제 프랑스의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는 유럽연합(EU)이 규정한 적자 한도(GDP 대비 3%)를 훌쩍 넘겼다. 공공부채 역시 GDP의 113%로, 유로존에서 그리스·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나랏빚에 바이루 총리는 "이대로 가면 지출이 더 늘고 부채 부담을 견디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의회와 국민에게 호소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바이루 총리의 긴축 재정안은 "복지와 민생에 대한 타격"이라는 좌우 모두의 공격만 받았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등 좌파는 사회적 약자 희생을 강조하며 '역진적 긴축'이라고 비판했고, 극우 역시 전기 요금 인상과 생활비 부담 확대를 이유로 반대했다. 좌우 어느 쪽도 받아들이지 않는 재정 개혁안이었으며, 재정 포퓰리즘 단맛에 취한 좌우는 그렇게 국가부채에 등을 돌렸다.
프랑스 재정 위기가 주는 교훈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재명정부는 '확장 재정' 기조 속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8.1% 증가한 728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내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4%, 국가채무는 4년간 440조원 급증해 2029년 말 GDP의 58%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 국면에서 지나치게 가파른 속도일뿐더러, 이를 메꿀 세입 방안도 현재로선 딱히 없다.
한 번 늘어난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조차 달콤한 복지와 포퓰리즘에 취해 재정의 고삐를 풀었다.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는 나랏빚과 정치적 혼란이라는 것을 우리는 프랑스 사태에서 배웠다. 재정은 표를 사는 수단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의 장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이재명정부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 프랑스의 위기에 있다. 더 늦기 전에 재정건전성에 대한 중장기적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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