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재연 기자] 한국 콘텐츠 수출의 70%를 차지하며 '효자 산업'으로 성장한 게임이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를 두고 기로에 섰습니다. 업계에선 법적 정의와 진단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성급히 질병으로 낙인찍을 것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 전반을 아우르는 균형적·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룹니다.
이철우 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2025 뉴스토마토 게임 포럼(NGF 2025)'에서 '게임, 질병 낙인 넘어 대중문화 주류로'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철우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회장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제1소회의실에서 <뉴스토마토>와 김성회·모경종 민주당 의원 공동 주최로 열린 '2025 뉴스토마토 게임 포럼(NGF 2025)'에 참석해 '게임, 질병 낙인 넘어 대중문화 주류로'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 같은 입장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날 포럼은 ‘기로에 선 한국 게임’이란 주제 아래 산업 정책 방향·인디게임 글로벌 진출·게임 질병 낙인 문제 등을 논의하는 장으로 마련됐습니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
이 회장은 "2023년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액 가운데 게임 비중이 최대 70%를 차지했다"며 "온라인·모바일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고, 중국·일본·미국 시장 진출과 글로벌 e스포츠 시장 선도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는데요.
이런 상황 속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에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그는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여부에 대한 결정이 임박했는데, 게임산업법상 '게임'의 범위와 이용장애 진단 기준이 여전히 불명확하다"며 "게임산업 주요국과의 관계에서 K-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WHO는 지난 2019년 국제질병분류(ICD-11)에 ‘게임이용장애(코드 6C51)’를 포함했습니다. 이는 2022년부터 국제적으로 발효되면서 게임은 도박과 같은 중독 범주에 포함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데요. 다만 게임 질병코드 도입이 강제는 아니고 국가별로 선택해 결정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이 문제를 두고 국내에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인데요. 이 회장은 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으로, 특히 게임 개념의 법적 정의 부재로 인한 적용 범위 혼란 외에 △진단 기준 모호성과 과잉 진단 우려 △문화적·사회적 맥락 미반영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게임이용장애 도입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APA)는 게임의 공식 질병 인정에 신중한 입장이며 일본·프랑스 등 주요 게임 시장 국가들도 채택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 회장은 "국가별 상이한 입장은 무역 분쟁 등 통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게임 수출 비중이 큰 한국에 불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내 통계법 체계가 WHO의 ICD를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구조인지도 검토가 필요하며, 국가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게임이용장애' 판단으로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낙인 효과', 'e스포츠 산업과의 충돌'을 설명하는 발표 자료. (사진=뉴스토마토)
다른 디지털 콘텐츠 대비 형평성 문제도
그는 게임이용장애 도입 반대 논거로 SNS·OTT·유튜브 등 다른 디지털 콘텐츠와의 형평성이 결여됐다는 점도 지적했는데요. 이 회장은 "게임보다 SNS나 동영상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게임만을 질병화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밖에 △질병코드 도입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 효과 △e스포츠 산업과의 충돌 △중독 예방과 진흥이라는 정책적 모순 △헌법상 문화 국가 원리 및 표현·직업 자유 침해 가능성 등을 반대 논거로 제시했습니다.
한편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일상에 장애가 발생하는 사례도 일부 존재한다는 점, 체계적 통계 수집과 과학적 근거 마련의 필요성을 들어 게임이용장애 도입을 찬성하는 쪽의 논거도 언급했는데요. 이에 대해 이 회장은 "단순 찬성·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은 곧 질병이라는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 문제"라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법적 근거 없이 게임을 중독 관리 대상으로 삼고, 국립정신건강센터가 공식 결정 이전에 이를 기정사실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민관협의체가 6년간 비공개 회의와 연구용역만 반복하며 실질적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대중문화를 둘러싼 인식 변화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은 "만화는 과거 '불량 청소년 문화'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현재 만화(웹툰)는 한류의 핵심 콘텐츠"라며 "과거 비난받던 매체가 문화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사회적 인식과 평가가 반전된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게임도 주류 대중문화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는데요. "게임이 미래세대의 주류 산업이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며 "디지털 콘텐츠 전반에 대한 균형적·통합적 접근법을 모색하고 다른 법률과의 체계 정합성 관점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재연 기자 damgom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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