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미 투자에 이목이 쏠린 가운데 전체 미국 내 대미 외국인직접투자(FDI) 증가는 단기적 유입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고관세를 회피하기 위한 기업들의 직접 투자가 늘어날 순 있으나 높은 생산비·관세에 따른 총 교역량 감소 등 투자 유인은 제약될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더욱이 미국 투자와 중국 투자의 대립각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글로벌 경제 분절화는 최대 난제가 될 전망입니다.
지난 21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돈 원하는 '미'…경제 분절화 '심화'
25일 기관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에 대미투자 3500억달러를 약속한 상태이나 실익이 얻어낼 수 있을지는 단언하기 힘든 시기로 평가됩니다. 민간 기업의 직접투자 규모가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미국 경제의 하방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녹록지 않은 상황입니다.
기관 한 관계자는 "앞선 대미 투자 약속은 대부분 펀드로 실질적 딜은 기업들의 직접투자에서 실익을 얼마나 이끌어 낼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도 결국 미국 내 기업들의 직접투자에 쏠려 있다고 본다. 37조 달러 이상의 정부부채를 감안하면 '돈'이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한·일·유럽연합(EU)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가 대표적입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 일본, EU는 상호 관세율 인하를 대가로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각국의 경제적 위상과 미국 의존도에 따라 투자 규모, 분야, 방식 등이 상이하지만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는 공통된 합의 사항"이라며 "합의한 한·일·EU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규모는 연간 약 2800억달러로, 이는 2024년 미국 에너지 수출 총액에 필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국제금융센터가 분석한 대미 외국인직접투자(FDI) 동향을 보면 지난해 미국에 대한 외국인 FDI는 2923억달러로 전년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FDI가 둔화된 점을 감안하면 미 FDI비중은 2019년 13.9%에서 2021~2024년 20.1%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FDI는 528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1% 급감한 배경도 미 관세 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따라 기업들의 전략적 결정이 지연된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미 FDI의 분절화 추세는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우선투자정책 기조하에 있는 트럼프 2기 정책은 동맹국의 대미투자와 관세 회피형(Tariff-Jumping) FDI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적대국의 대미투자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은재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중국·홍콩의 대미투자가 크게 감소한 반면, 유럽(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캐나다, 일본 등 우방국가들의 대미투자 금액과 비중은 증가했다"며 "분절화 추세는 최근 미국 기업의 해외투자, 국경 간 인수합병(M&A) 거래에서도 프렌드쇼어링, 니어쇼어링 등의 형태로 더욱 뚜렷해지는 경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 대미 FDI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나 미국 정부가 원하는 만큼의 대규모 유입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경제적 비효율성에 따른 소비자 비용 전가, 글로벌 경제의 분절화 등 부정적 여파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직접투자하는 기업들이 증가할 수 있지만 미국의 높은 생산비용 및 관세로 인한 총 교역량 감소 등이 투자 유인을 제약한다"며 "해외 정부가 약속한 FDI의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동맹국 기업들은 미국에 대한 투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동남아 지역 등에 대한 투자를 더욱 확대(글로벌사우스)하면서 글로벌 경제 분절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5일 서울 시내 기업 밀집 지역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 '하방 위험'…수출 밝지 않다
물가상방 위험과 고용 시장의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는 점도 제약적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특히 지난 22일(현지 시각)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현재 미국 노동시장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노동의 공급과 수요가 뚜렷하게 둔화하면서 '특이한' 균형 상태로 '하방 위험'을 시사한 겁니다.
국내 제조업 업황을 둘러싼 전망도 내수와 수출 간의 혼조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9월 제조업 업황과 관련한 산업연구원의 전문가 서베이 지수(PSI)를 보면, 내수(104)가 생산(105)과 함께 기준치(100)를 상회하나 수출(98), 채산성(99)은 밑돌았습니다.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은 밝지 않은 상황입니다.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 발표한 성장률 전망을 보면, 0.9%로 1%를 넘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12월 1.8%에서 0.9%포인트 하향 조정한 수치입니다.
올해 수출도 0.2%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 상태입니다. 성장률 마이너스 요인에는 내수 요인인 건설 부진도 있지만 트럼프 관세 영향도 한몫하기 때문입니다. 8월 중순까지 미국 수출은 이미 시행된 철강·자동차 관세 영향 등으로 2.7%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김재훈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올해 1분기 실적이 워낙에 안 좋았다. 상반기가 전년 동기 대비로 보면 0%대 초반밖에 안 됐다. 연간 0.9% 성장하려면 하반기에는 1%대 중반을 해야 한다"며 "(0.9%)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0.9%를 달성하고 성장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4일(현지 시간) 워싱턴DC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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