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책임 안 묻는 '전세대출 부실'
2025-08-12 15:09:10 2025-08-12 17:52:43
 
[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은행들의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부실 심사로 전세사기 피해를 본 임차인들이 빚더미에 몰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는 은행이 전세대출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전세사기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규탄했습니다. 
 
은행들은 대출 심사를 과도하게 강화하면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전세 공급 축소로 이어질 수 있어 은행이 단독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은행들의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부실 심사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빚더미에 몰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금융기관 규탄 및 제도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전세사기 피해자들 "은행 책임져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12일 은행연합회 앞에서 '전세사기 피해에 대한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무분별한 전세대출 피해와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례를 발표한 뒤 금융기관과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과 제도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당초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전세자금대출이 현재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대출금을 포함해 전 재산을 잃어도 모든 상환 책임을 피해자가 져야 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금융기관은 전세대출을 내주더라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공적 보증 덕에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임차인 신용정보 등 조건만 맞으면 주택·임대인 심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고 대출을 내주는 구조입니다. 때문에 전세사기 위험이 있는 건물에 대출을 내주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김량화 서울 동작아트 전세사기 대책위 부위원장은 금융기관의 부실한 전세대출 심사와 이를 방관한 금융당국으로 인해 위험한 건물에 전세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다가구주택에 입주했는데 해당 주택은 위반 건축물이라 전세대출이 불가능한데도 은행은 대출을 실행했고 금융감독원은 임차 목적물이 위반 건축물이 아니라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금융당국이 공적 역할을 망각한 채 이익과 책임 회피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 2015년 20조원에서 2023년 6월 기준 162조원으로 8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 사례 중 은행 직원이 가담한 정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 대림동 전세사기 피해자 안산하 씨는 다른 임차인들 전세사기 피해 사례를 공유하던 중 피해자 12명 중 8명이 부동산 중개업자와 임대인을 통해 같은 은행 직원에게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됐다고 전했습니다. 안씨는 "같은 중개 보조원과 은행 직원을 통해 전세대출을 받았는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임대인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며 "전세대출을 받는 임차인의 신용정보는 심사하면서 임대인의 신용정보는 심사하지 않는 게 현실인데 은행의 책임이 없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금융권이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전세사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갖고 피해자 구제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전세사기 배드뱅크' 도입 방안이 거론됐으나 신속 추진 과제에는 담기지 않아 도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배드뱅크는 공공이 피해주택의 선순위 채권을 매입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 핵심 대안으로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 ▲금융기관에 전세대출 심사 강화 및 불법·탈법·과잉 대출 금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적극 협조 ▲전세대출에 따른 수익 피해자 지원에 활용 등을 요구했습니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은 "피해자들은 피눈물 흘리며 개인회생을 고려하는데 전세대출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은행들은 조금의 고통 분담도 하지 않으려 한다"며 "전세대출로 벌어들인 이자수익의 1%라도 상생기금으로 출연하고 피해자 지원금으로 지급할 수 있게 보장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은행 "심사 강화 시 실수요자 대출 어려워져"
 
은행들은 전세대출이 정책금융 성격이 있는 만큼 대출 심사를 과도하게 할 경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임대인 및 주택 검증은 현실적으로 금융권 단독으로 검증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 제도 자체가 현실적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마련됐기 때문에 대출 검증을 확대할 경우 청년·신혼부부 등 진짜 필요한 사람도 돈을 빌리지 못할 수 있어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등기·근저당 여부, 임대인 신용·범죄 이력 등은 대출을 내줄 때 확인할 의무가 아니라 금융당국이나 정부 방침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전세대출 공급이 줄면 전세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금융권 하나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전세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단체는 은행이 무분별하게 전세대출을 내줘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전세사기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며 규탄했다. 사진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에서 규탄 발언을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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