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과한 15% 자동차 관세가 본격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현대차가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앞으로는 관세 폭탄이 기다리고 있고, 뒤로는 미 현지 생산 확대에 따른 비용 증가와 국내 노조 반발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정부는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최악은 피했다”며 성과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대차 입장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누려왔던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실질적 타격이 불가피해진 상황입니다. 현대차는 당장 가격 인상보다는 ‘버티기’ 전략을 선택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 현지 생산 비중 확대와 공급망 재편이라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생산 감축과 고용 불안이 불가피해지면서 노조와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관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의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근본적인 해법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트럼프표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난 7일 경기 평택항 부두 야적장에 수출용 차량들이 놓여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와 현대차의 ‘동상이몽’
먼저 미국과의 상호관세 협상 결과에 대해 정부와 현대차의 온도차는 뚜렷합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상 타결 뒤 열린 브리핑에서 “12.5%를 최선을 다해 주장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유럽 같은 경우도 다 15%”라고 했습니다. 이어 “12.5%로 끝까지 주장했는데, 미국식 의사결정 과정이 ‘우리는 이해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다’ 이렇게 했다”며 “우리 안을 (고수)하려고 하면 여러 틀이 흔들린다”고 덧붙였습니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으로 내세웠던 60% 관세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하면 15%는 그나마 받아들일 만한 수준이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협상 초기 트럼프 측이 요구했던 더 높은 관세율에서 15%로 낮춘 것 자체를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체감은 다릅니다. 현대차는 “경쟁력 제고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을 통해 내실을 다지겠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결과에 대한 환영보다는 앞으로의 과제에 방점을 찍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한·미 FTA 체결 이후 약 15년간 무관세 혜택을 누리며 미국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보다 2.5% 가격 우위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혜택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근본적인 경쟁 구도가 바뀌게 됐습니다. 정부가 협상 타결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실질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현대차의 주력 수출 차종인 투싼 등이 모두 관세 대상에 포함되면서 가격 경쟁력 하락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또한 관세 부과로 인한 가격 상승을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판매량 급감이 우려되는 만큼, 현대차로서는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라도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는 원가 절감 자체가 쉽지 않다”며 “수출 단가를 관세에 맞추려면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관세가 또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15% 자동차 관세로 인한 손실을 메울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정부는 관세율 완화를 앞세워 수출량 회복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관세 타격을 최소화하려면 현대차로선 현지 생산 확대와 원가 절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앨라배마 제조 공장 모습. (사진=현대차)
미국 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해선 가격 인상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가 가격을 올리기 위한 시뮬레이션 중일 것”이라면서 “다만 가격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신모델 출시 타이밍에 맞춰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미 생산 확대에 노조 반발 ‘불가피’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미 현지 생산 확대가 유일한 해법이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국내 생산 감축과 이에 따른 노조 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차는 이미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공장에서 아이오닉5 등의 생산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에서는 아이오닉5 라인 등에 대해 특근을 편성하지 않고 생산을 축소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한 생산 기지 이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 이유입니다. 앞으로 관세 영향이 본격화되면 더 많은 차종의 현지 생산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현대차가 아직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 생산 확대 추진이 추가적인 노사 갈등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노조 입장에선 해외 생산 확대가 곧 국내 일자리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강력 반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해외 생산 확대는 단순히 생산 라인 이전에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 부품 공급망까지 함께 이전되는 경우가 많아 국내 자동차 생태계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수 있습니다. 현대차로서는 관세 대응과 국내 고용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문제는 향후 전기차 전환과 공장 자동화 등을 통해 현재보다 필요 생산 인력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데다, 미국 관세로 인해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하는 처지에서 국내 생산 확대는 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울러 현대차의 주 4.5일제, 기아의 주 4일제 시행도 신차 출시 일정에 따라 생산량을 유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자동차 업계 특성상 또 다른 고비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6월18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위한 상견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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