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대학교 연구진이 만성열의 사례로 제시한 미국 마이애미 기온 변화. (사진=Environmental Research Climate)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지난 7월31일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일본과 한국, 기록적인 더위로 고통 겪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이날까지 22일 지속된 서울의 열대야가 기상 관측이래 최장이라는 내용을 포함한 기록적인 폭염의 피해를 다뤘습니다. 몇 주 동안 극심한 폭염이 한국은 물론 미국, 중국, 유럽을 강타했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또 다른 위험한 형태의 열, 즉 ‘만성열’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마이애미니 피닉스 같은 지역에서는 폭염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수개월 동안 기온이 급상승할 수 있으며, 이는 신장 기능 장애, 수면 무호흡증, 우울증 등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이 수개월간의 노출에 따라 어떻게 누적될 수 있는지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마이애미 대학교의 기후과학자 메이라 크루즈(Mayra Cruz) 연구팀은 지난 6월27일 <환경연구: 기후(Environmental Research: Climate)>에 발표한 연구에서 "폭염 중심의 기존 연구는 전 지구적으로 수십억 인구가 겪는 장기 고열 노출의 실태를 놓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만성적 열 노출 위험 과소 평가해선 안 돼"
메이라 크루즈는 "폭염은 짧지만 강력한 충격이라면, 만성열은 서서히 건강을 파괴하는 장기적인 스트레스"라고 경고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기상청이 경고하는 '위험 수준'(90°F, 32.2℃도 이상)의 열지수가 1년의 절반가량 지속되는 마이애미는 세계적인 '만성열 지역'입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폭염'이 아니기에 별다른 경보나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 못 이루는 밤, 무너지는 신체 리듬
만성열은 인간 생리 전반을 교란합니다. 도시의 열섬효과로 인해 야간에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지역에서는 수면장애가 빈번하며, 이는 고혈압, 비만, 당뇨병 등의 심혈관·대사질환 위험을 높입니다.
호주 플린더스대학교 수면건강연구자 바스티앵 르샤(Bastien Lechat)는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수면에 영향을 주며, 특히 열대야가 반복되면 연간 평균 44시간 이상의 수면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며 "계절에 따른 적응 효과는 거의 관찰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장기 노출, 콩팥과 정신 건강까지 위협
중남미 농업 노동자들에겐 익숙한 만성열은 실제 질병과 직결됩니다. 지속적 탈수와 열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 신장병 발병률이 높으며, 휴식·그늘·음수 제공만으로도 콩팥 기능 악화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아리조나 주립대 중환자의학자 포프 모슬리(Pope Moseley)는 "열은 만성질환의 '위력 증폭기'다. 열 스트레스는 혈액을 피부로 몰아 다른 기관의 혈류를 줄이며, 일부 약물은 체온 조절 기능을 저해하거나 효능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심장질환자, 정신질환자, 당뇨병 환자 등은 만성열 속에서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실제로 4월에서 10월까지 무더위가 계속되는 일본 도쿄에서는 '에어컨 있어도 켜지 않는 노인들'의 사망률이 급증한 사례가 있습니다. 일본 환경청에 따르면 도쿄 23개 구의 검시 결과 2024년 7월에만 123명이 열사병으로 사망했는데, 이 중 121명은 실내에서 사망했고, 79명은 에어컨을 설치해두고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망자들 대부분이 80대와 70대 고령자였습니다. 고령자들이 '에어컨은 건강에 해롭다'고 믿거나, 이전에는 에어컨을 사용해 본 경험이 없어 습관적으로 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이나 거실이 아닌 침실이나 복도 등은 냉방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심지어 리모컨 배터리 방전, 난방 모드 유지, 필터 막힘 등 단순한 실수로 냉방 효과가 전혀 없었던 사례도 많았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의 30~60%는 잠잘 때 에어컨을 잘 사용하지 않으며, 이는 겨울철 난방과 달리 냉방에 익숙지 않은 문화적 요인과도 연결됩니다.
폭염 대응도 중요하지만…'만성열 복지정책' 시급
만성열에 의한 피해가 엄청나게 큼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정책은 여전히 단기 폭염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의 크리스티 에비(Kristie Ebi)는 "만성열 노출 지역이라도 사망률 상승이 확실하게 관측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연구와 대응이 더디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취약한 사람들이 충분한 데이터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만성열 관련 연구가 부족한 것은 그것이 주로 빈곤층, 유색인종, 노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 계층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지금까지의 폭염 대응은 단기적 재난관리 중심이었습니다. 예컨대 폭염 상황 발생 시 폭염경보나 주의보를 발령하고 냉방센터를 개방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만성열은 90일 이상 지속되는 고온으로, 이는 여름 한 계절 내내, 혹은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버스정류장·공사현장·공원 등 취약 공간에 그늘막 설치, 음수대 및 야간 냉방공간 확보, 에너지요금 보조와 같이 상시적이며 구조적인 대책이 요구됩니다. 인도는 이미 국가재난관리청(NDMA)이 주도해 각 주와 지자체에 열 대응계획 수립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피닉스시는 ‘열 계절’을 4월부터 9월까지로 설정해 계절 단위 대응체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물 배포, 노숙자 대상 아웃리치, 야간 냉방소 운영 등이 상시적으로 진행됩니다.
기후위기 시대, 진짜 위험은 ‘끓는 일상’…열을 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학자들은 만성열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폭염이 단기간의 '급성 스트레스'라면, 만성열은 계절을 통째로 잠식하는 '만성 질병'이자 사회적 재난입니다.
또한 만성열은 단순히 사망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사회적 고립, 재정 스트레스, 교육 성취도 저하 등 전방위적인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미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 따르면, 학교 기온이 32~37℃일 때 학습 성취도가 약 0.17년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는 "극단적인 폭염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일상'이 됐을 때"라고 썼습니다. 더 이상 '한여름의 재난'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열. 우리 사회는 매일 반복되는 고온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대응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단순한 '예보 시스템 개선'이나 '경고문자 발송' 수준을 넘어, 도시 설계, 에너지 복지, 사회적 안전망 강화라는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열은 더 이상 날씨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건강과 권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불평등, 기후 불평등의 다른 이름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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