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소년공', 단순한 어린 시절 직업 경험을 넘어 이재명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정당성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상징입니다. 그는 검사가 아닌 인권변호사를 택했고 성남시의료원 설립 좌절은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재선 성남시장·경기도지사를 거쳐 국회의원이 됐지만 정치적 성장 과정은 당내에서도 철저한 '비주류' 경로였습니다. "적자, 서자도 아닌 얼자의 삶이지만 왜 기죽나!"라고 외쳤던 그는 3번의 대권 도전 끝에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중학교 대신 공장으로…'흙수저' 이재명의 집념
최근 펴낸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에서 이재명 당선인의 유년기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참혹했다."
그는 1963년 경북 안동 산골 마을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가족은 그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성남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했습니다.
만 12세 소년은 5년 6개월간 여섯 곳의 공장을 다녔습니다. 한 목걸이 공장에서 황동선을 납과 염산으로 땜질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는 "납·염산에 얼굴을 묻고 살았다"며 "납 같은 게 몸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선 프레스기에 손목이 눌리는 사고로 평생 팔이 굽은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시계 공장에서 일할 때 썼던 화학약품으로 인해 후각이 마비돼 지금까지도 냄새를 잘 못 맡습니다.
'관리자가 되면 매 맞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공부에 매진한 그는 1년 3개월 만에 고입·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졸음을 이기기 위해 책상에 압정을 뿌려놓고 공부했을 정도로 학력고사를 독하게 준비한 끝에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사진=이재명 캠프)
판검사 대신 인권변호사…'시민'에서 정치인을 꿈꾸다
이 당선인은 처음엔 판검사 임용을 희망했습니다. 가난의 한을 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나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을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1989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활동하고, 1995년 성남시민모임 창립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발을 들였습니다.
정치 입문 결심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던 경험에서 비롯됐습니다.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운동을 벌였는데요. 주민 2만명 동의를 받았음에도 시의회 반대로 의료원 건립이 좌절됐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성남시의 두 종합병원이 폐업하면서 수정구·중원구 55만명의 주민이 의료 공백 상태에 놓인 상태였습니다.
"기득권 세력은 이익이 없는 한 국민 건강·생명에 관심이 없다. 저들이 하지 않으면 우리 손으로 바꾸자." 이 당선인은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자마자 성남시장 출마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첫 성남시장과 분당갑 국회의원 선거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2010년 성남시장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지난 2004년 당시 '성남시립병원 설립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대표였던 이재명 변호사의 YTN 인터뷰. (사진=YTN)
위기엔 현장, 논란엔 직진…'행동 정치'로 쌓은 존재감
그는 취임 직후 지방정부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 지급유예)을 선언하고 3년 만에 부채 4572억원을 갚았습니다. 정치 입문 계기였던 성남시립의료원도 2013년 착공했습니다. 이어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하며 '3대 무상 복지 정책'(청년배당·무상 산후조리·무상교복)을 펼쳤습니다.
또 2016년 박근혜정부의 지방재정 개혁 추진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광화문에서 단식 투쟁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와중에 탄핵을 가장 먼저 주장하는 등, 돌직구 행보와 사이다 발언으로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선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변이었습니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35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며 '일 잘하는 행정가'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서울외곽순환도로의 명칭을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로 바꾼 걸 시작으로, 경기도 계곡 정비 사업, 남한산성 불법 노점 정비 사업 등을 밀어붙였습니다.
반발을 우려한 공무원들에게 "나를 팔아라"라고 말하고, 마지막까지 저항한 불법 노점 주위를 펜스로 둘러싸 봉쇄해 버린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의 업무 영역을 확장하는 등 행정권 행사를 극대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신도 명단 제공을 거부하는 신천지 본부에 직접 찾아가 "명단 확보 때까지 철수하지 말라"고 지휘하는 등 강한 행정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2019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양주시 고비골의 한 계곡내 불법 설치물 철거작업현장을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경기도)
변방에서 주류로…마침내 대통령까지
그러나 이 당선인의 정치 인생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치 입문 초창기인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는데요.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막판 지지율 추락 등 정치적 위험에 처하자, 정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비난을 가했습니다.
이 당선인도 동조·가세하면서, 그와 친노(친노무현)계 사이 악연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정 후보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참패했고, 다시는 민주당 주류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정 후보를 도운 이 당선인 역시 이 일로 친노무현·친문재인계의 눈 밖에 났습니다. 2021년 20대 대선 경선에서도 이 당선인을 향해 "노 전 대통령을 여러 차례 저격했다", "노무현의 적자는커녕 서자도 되기 어렵다" 등의 공격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당선인은 50.29%의 득표율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를 누르고, 처음으로 민주당 대선 최종 후보가 됐습니다. 다만 본선에서는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과 친문(친문재인)계와의 갈등 등이 발목을 잡으며, 윤석열 후보에게 0.76%포인트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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