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12·3 비상계엄'이 야기한 조기 대선의 청구서는 수백조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선거에 각 후보들이 선심성 공약만 남발한 영향인데요. 정책 공약집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한 선거가 유권자들에게는 '깜깜이 선거'로 다가올 예정입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에 따른 이른 '트럼프 청구서'까지 더해져 이른바 '제로 성장률'은 고착화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천문학적 돈 들어가는데…재원 조달 '빈칸'
27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요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 검증을 위해 발송한 질의서와 각 후보들의 답변서를 종합하면, 당선 이후 공약 이행을 위해 소요되는 재원은 향후 5년간 '수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각 후보들이 자신들의 공약에 대한 재원 추계 자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백조'의 예산이 든다고 예상한 결과물인데요. 사실상 유권자들의 제대로 된 선택을 방해하는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사전투표를 사흘 앞두고 나서야 대통령 선거 정책공약집을 내놨고, 민주당은 본투표를 일주일 앞두고도 후보 공약집을 내놓지 못하면서 역대 최장 지각을 기록했습니다. 민주당은 사전투표 전에는 공약집을 내놓겠다는 계획입니다. 개혁신당은 공약집을 아예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늑장 공약집만큼이나 각 당의 재원 구체성도 떨어집니다. 특히 이들은 10대 공약에 대한 재원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대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재원 추정치를 밝혔는데요. 민주당은 약 210조원, 국민의힘은 150조원이 공약 이행에 쓰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정공약 247개와 지역공약 124개를 제시할 예정인데요. 민주당은 국정공약 이행에 210조원이 쓰일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분야별 재원조달 규모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지역공약에 대해서는 미확정이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10대 공약에 대한 세부공약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요 예산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공약 정리 중'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김 후보는 국정공약 302개와 지역공약 107개가 제시될 예정이라면서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5년간 약 150조가량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재원조달방안은 매년 재량지출 10% 정도 수준(약 30조원) 구조조정 추진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10대 공약 소요예산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조직력 부족에 따라 재정설계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공약 이행을 위한 필요재정 추계에 대해서도 공약을 수정 변경(업데이트) 중이어서 특정할 수 없다고 공지했습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27일 서울 성북구 정릉 인근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제로 성장률'에…엎친 데 덮친 격
각 후보들이 내놓은 예산 규모는 세부 공약의 소요 재원까지 파악하지 못한 예상치에 불과합니다.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분야 공약만 봐도 이미 '100조원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고, 각종 지원 공약 역시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공약들이 선거를 위한 공약으로 끝나거나, 적자국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소요 예산의 예상치를 밝힌 이재명·김문수 후보는 모두 '국가부채 증가'의 감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후보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추진하고 김 후보는 규제 철폐와 감세를 통한 경제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요.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재원 조달을 위한 방안으로는 지출에 대한 구조개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 당시에도 3년간 매해 20조원가량의 구조조정을 해왔습니다. 이미 정부 내에서는 '더 줄이기 어렵다'라는 토로가 나오는 실정입니다. 누가 당선되든 막대한 규모의 세수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겁니다.
2000년 이후 출범한 역대 정부는 모두 취임 100일 이내에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통과시켰습니다. 새 정부 역시 추경이 계획된 모양새인데요. 이른바 '트럼프 청구서'에 해당하는 관세 문제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수출 문제, 주한미군 등 안보 분야에서의 비용 청구 문제까지 고려하면 대내외적인 '이중고'가 불가피합니다.
게다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0.8%로 대폭 낮춘 바 있습니다. 또 현대경제연구원은 0.7%로 전망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은 2.0%에서 1.0%로 하향했는데요. 내수 부진과 미국발 관세 충격, 정국 불안 등이 '제로 성장률'을 촉진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이번 선거의 특성상 정책보다 정치 위주의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0.8%의 경제 성장률에 세수 확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 후보들이 재정 건전성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결국에는 공약대로라면 세수 펑크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도 "준비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만 난무하고 있다"며 "졸속으로 준비된 선거인만큼 국민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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