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표진수 기자] 세계 경제를 격랑 속에 빠트린 미·중 무역전쟁이 관세 협상을 통해 휴전 상태에 돌입하면서, 재계에서는 일단 ‘최악은 피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로가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90일간 대폭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양국 갈등이 봉합 국면을 맞았지만, ‘타결’이 아닌 ‘유예’인 만큼 확전 가능성은 여전한 모습입니다. 미중 관세가 요동치는 데 따라 여러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미중 관세 협상 결과가 한국에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가장 공격적으로 관세전쟁이 진행된 양국이 일단 ‘완화’로 합의에 이른 만큼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이태규 한국경제인협회 글로벌리스크 팀장은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는 가장 높은 수준인 ‘천장’ 역할을 했는데, 이 천장이 낮아진 것으로 다른 나라에게 좀 희망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미국과 동맹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 훨씬 낮은 수준에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로 전망된다”고 분석했습니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도 “미국이 중국에 대해 이렇게 우호적으로 태도를 취했다면 우리나라도 협상을 할 때 그 이상은 기대할 수 있지 않겠냐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며 “상호관세가 최저 10%로 더 내려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결국 품목 관세에 대한 부분 협상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지가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앞서 미국과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를 각각 115%p 인하하기로 지난 12일(현지시간) 결정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이 중국 상품에 매긴 관세는 145%에서 30%로 낮아지게 됐고, 중국도 보복 관세율을 미국과 같은 폭으로 내려 기존 125%에서 10%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이중 미국의 관세율 30%는 펜타닐 원료 수출에 대한 책임을 묻는 20%가 포함됐는데, 이를 제외하면 미국과 중국은 각각 10%의 상호관세를 유지하게 됩니다.
지난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장 게양대에 미국과 중국 국기가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이번 조치는 90일 유예라는 한시적 조건이 달렸습니다. 양국은 일단 90일간 인하된 관세를 적용하고 협의를 통해 후속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협상이 무산되거나 관세율이 번복되는 등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 연구원은 “90일간 유예를 하고 후속 협상을 진행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한 상황이라 (관세 완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만은 어렵다”라며 “보조금 문제나 미국이 지적한 불공정 무역 관행 등에 대해 중국이 이를 바로 바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에 또다시 이런 관세 문제가 언제든 대두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재계에서도 신중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일단 ‘최악은 피했다’는 안도 속에서 그간 지속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변화무쌍한 행보 등 완벽히 해소되지 않은 불확실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90일 유예라는 것은 임시 방편으로 어떻게 타결될지 모르기에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양국의 관세 완화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미국향 중국산 완제품의 가격 경쟁력 측면 등 반작용도 있을 수도 있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지난달 29일 경기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양국 관세정책에 직접적 영향이 예상되는 업계에서는 업종별로 다소 시각차가 존재합니다. 최종 타결로 이르기까지는 아직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지만, 미중 해빙 무드에 따른 긍정적인 전망과 함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공존합니다.
반도체 업계는 일단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양국의 협상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 대중국 수출 통제 등 제약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일 협상 불발로 미중 관세전쟁이 재점화될 경우 중국향 수요 둔화에 따른 북미 고객사들의 판매량 감소로 국내 업계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합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양국 간 협상이) 타결로 급작스럽게 변화가 이뤄진 것이 아닌 (불확실성이) 조금 연장된 것 뿐”이라며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에 대한 대전제는 변하지 않기에 여전히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온 배터리 업계의 셈법은 복잡합니다. 관세 완화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의 시선과 함께 중국산 원재료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공존하는 까닭입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배터리가 미국 전기차에 대량 공급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중국산 재료를 싸게 들여와서 미국 현지 생산을 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생길 것이란 측면도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산 부품 의존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국내 완성차 업계는 반색하는 분위기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부품 수입 중 중국산 비중은 45%에 달합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미중 관세 완화와 관련 “한국 내에서 생산하는 차종이나 미국에서 조립하는 차종 모두 부담이 완화된다”며 “자동차의 생산 원가면에서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덕훈·표진수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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