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미워도 국힘을 플랫폼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만들려고 그래도 팔레스타인에 쳐들어와갖고 땅을 일단 접수를 해갖고 국가를 건설할 토대를 만들어야지." 윤석열이 2021년 7월 국민의힘 입당 직전 지지자 모씨에게 전화로 한 말이다.
국민의힘은 사당(祠堂) 같은 정당이다. 당사에는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의 사진이 걸려 있지만, 진작부터 이승만과 박정희는 '상징'에 불과한 옛날 사람들이었고 김영삼은 IMF 사태 이후 집안에서 축출되었다. 이 당은 이회창이 두 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로 이명박, 박근혜, 홍준표, 황교안 등 제사장들을 세우고 갈아치우길 거듭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국민의힘에 최악의 사태를 안긴 윤석열은 일단 이 역사에서 비켜나 있다.
1990년대 민주자유당 계열 정당이 내부의 주류를 연신 교체한 것은 시대에 적응하고 변화를 주도한 것과 맞물려 있었다. 민자당은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옹호한 세력을 포함한 정당이었지만, 쿠데타를 처벌한 당이기도 했다. 1995년 말 민자당 후신 신한국당의 대표 김윤환이 당내 반대자를 설득하며 5·18 특별법 통과에 나선 것은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윤석열의 친구 권성동은 노태우의 친구 김윤환과 이리도 대조적이다).
민자당의 의식 세계에는 "그래도 우리가 더 많이, 더 오래 해먹었지"라는 겸연쩍음이 있었고, 그것을 실력으로 만회하겠다는 주류의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개혁 반대'로 승부하지 않고 '개혁은 우리가 하는 게 확실하다'는 메시지로 경쟁 세력에게 승리했다. 김영삼정권이 즐겨 쓴 '안정 속의 개혁'이나 2012년에 내건 '경제민주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태우정부의 남북기본합의부터 박근혜정부의 재벌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이 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해낸 정책들'은 적지 않았다.
박근혜 파면 이후 주류의 자리에서 밀려나던 국민의힘에도 과거 민자당의 길은 교과서가 될 수 있었다. 마침 국민의힘을 권위주의의 후예이자 부패한 기성 세력으로 인식해온 세대는 40·50대가 되어 강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세대는 나이 들며 정치 성향이 바뀌는 '연령 효과'도 별로 타지 않는다. 노령화는 더 이상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국민의힘의 낡은 이미지는 중산층은 물론 상위층에게도 기피 대상이다. 그렇다면 김영삼정부 시절처럼 가장 보수적인 정당이 오히려 기득권을 과감히 혁파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노태우가 내걸었던 '보통 사람의 시대'로 뻗어 나가야 했다. 민주당의 주류 이미지가 점점 굳어지고 있는 것도 국민의힘에게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민자당 시절에는 기득권 냄새를 빼기 힘들었지만, 2020년대에는 스스로를 백지화하고 신선하게 재출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 정반대로, '역사 극복'이 아니라 '과거사 함몰'로 걸어갔다. 민자당은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은 세 자릿수 국회 의석을 갖고도 피해의식을 원동력으로 삼는다. 자신이 가장 핍박받는다 믿으면서 거듭 교리나 외우고 있으니 전향적 정책이 나올 수가 없으며 수권 능력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10년 20년을 넘긴 연식 있는 정치 기술자들이 제법 많긴 하지만 모두 군중에게 끌려다니고, 변변한 업적 하나 없는 윤석열은 실패한 내란으로 당을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의힘은 민자당에게 물려받은 '플랫폼'에서, 민자당의 역사를 끝장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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