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봄은 오는가
2025-03-20 06:00:00 2025-03-20 06:00:00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시인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는 짧은 시 속에 봄의 감각을 가만히 담아냈다. 겨울 끝자락에서 움트는 생명의 기척, 차가움 속에서도 조심스레 피어나는 희망의 기운. 봄은 그렇게 늘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러나 이 계절이 주는 따스함은 단지 자연의 변화만이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회의 격랑 속에서도 ‘정치의 봄’을 기다린다. 지난 겨울은 계엄과 탄핵, 구속으로 이어진 ‘정치의 겨울’이었다. 탄핵이 마무리되고 얼어붙은 시민의 마음에 변화와 가능성의 새순이 돋기를 바란다.
 
자연의 봄은 확연하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도, 구례 화엄사에선 홍매화가 찬란하게 피어나고 자주 산책하는 습지공원의 버드나무엔 새잎이 돋는다. 그러나 정치의 봄은 늘 불확실하다. 어떤 봄은 조심스레 문을 열다 다시 차가운 겨울로 돌아가고 어떤 봄은 누릴 새도 없이 뜨거운 여름으로 질주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의 봄은 몇 차례 있었다. 1960년 4·19혁명은 자유와 정의를 향한 봄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1961년 박정희의 5·16 쿠테타로 그 봄은 질식됐다. 10·26 사태로 만들어진 1980년 봄은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신군부의 5·18 광주학살로 아스팔트에 처연한 피의 꽃으로 떨어졌다.
 
1987년 6월 항쟁은 또 다른 봄의 이름이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거리의 시민들은 직접 대통령을 뽑을 권리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 봄은 완전한 개화가 아니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정치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마치 꽃망울을 맺고도 개화하지 못한 봄처럼.
 
2016년 겨울 촛불혁명은 2017년 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극복 등 성과도 적지 않았으나 검찰개혁에 실패하고 결국 윤석열 정권이 등장하는데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주지하다시피 윤석열은 전대미문의 무능과 전횡을 되풀이하다 계엄이라는 헌정 파괴 행위까지 치달았다.
 
정치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수많은 실망과 혼란 속에서새로운 리더십, 건강한 협치, 책임 있는 국정을 기대한다. 그것은 삶을 바꾸고 싶은, 더 나은 공동체를 꿈꾸는 시민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시계 제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어떻게 결정날지 여전히 알 수 없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진영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라는 기초를 허물어버린다면 우리는 다시 봄을 잃을지도 모른다. 1961년, 1980년의 봄으로 다시 되돌아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봄을 말해야 한다. 3월의 봄이 반드시 4월의 꽃으로 이어지듯 시민의 참여와 실천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을 견디며 봄을 부른다. 정치의 봄을 꽃피우기 위해 우리 모두는 봄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봄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시인 이성부는 <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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