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사회에 신파시즘이 출현하는가
2025-03-18 06:00:00 2025-03-18 06:00:00
가끔은 우리가 어쩌다 겪는 일이라도 보다 큰 변화의 일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작년 12·3 계엄으로부터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둔 지금에 이르는 100여일의 시간은 어쩌다 나온 일탈이며 비정상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 무언가 한국 사회의 큰 변화를 보여주는 일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지금은 이 정도 충격이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더 충격이 올 수도 있다. 극우 신파시즘 세력이 국민의힘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가 하면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전복한 지도자가 풀려나오는 과정은 충격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런 정치의 이상기후가 더 심화되면 혁명과 반혁명이 충돌하는 대형 허리케인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사회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정보화 시대를 넘어 지능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공동체에 분열의 조짐이 쌓여왔다. 기술혁명이 우리의 모든 일상에 변혁을 초래하는 징후가 명확하였지만 이에 조응한 사회혁명은 지체되었다. 인공지능으로 표상되는 기술혁명은 단 하나의 플랫폼이 모든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초독점(hyper-monopoly)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반대로 대다수 플랫폼 사용자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무료 노동을 하는 현대판 농노로 전락하고 있다. 1980년대에 상위 1%가 부의 20%를 차지했다면 50%를 넘게 독점하는 지금은 현대적 자본주의라기보다 신봉건주의에 가깝다. 이런 불평등 체제를 더욱 강화하고자 더 강한 국가에서 독점을 보호하고 민주주의를 유보하며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흐름이 바로 신파시즘이다. 반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에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를 확충하며 공공 교육과 의료를 확충하고자 세금을 인상하는 흐름은 신사회 혁명주의다. 이 둘이 서로 충돌하는 시작점이 바로 지금이다.
 
서부지법에 난입하며 “윤석열 석방”을 외쳤던 무리들이 진심으로 윤석열을 지지해서 그런 과격한 불법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창문을 통해 사회혁명을 저지하는 신파시즘에 눈을 뜬 것이 아닌가. 기존의 제도적 민주주의는 1인 1표라는 평등한 주권 행사 체제이기 때문에 다수의 불평등 피해자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을 견딜 수 없다. 외국인, 장애인, 노조원, 여성들은 저마다 조직을 결성하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부의 불평등과 독점 체제에 위협을 가중한다. 여기에다 기본소득이나 부유세, 토지공개념, 할당제도와 같은 반시장, 반능력주의 제도가 도입되면 지금의 서열화된 불평등 체제는 크게 위협받는다. 민주주의 규칙을 파괴해서라도 사회혁명을 저지하고 외국인이나 사회적 약자를 낙인찍어 희생양으로 삼고자 하는 폭력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반혁명 파시즘을 다름 아닌 윤석열이 호명했기 때문에, 윤석열의 석방과 탄핵 심판 각하를 외치게 된다. 따라서 윤석열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 흐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지능 사회가 만들어낸 불평등주의, 초독점을 통한 위계와 서열의 질서는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신파시즘은 최소한으로 볼 때 12·3 계엄을 지지한다는 18% 정도다. 그러나 최대한으로 추정한다면 윤석열 탄핵 기각을 지지하는 36%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들은 무능한 민주주의를 혐오하며 외국인과 장애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에 찬성한다. 윤석열 이후 한국 사회는 신파시즘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민주적 자본주의라 할 수 있는 신사회혁명의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크게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다. 우리 민주주의는 1987년 이후 스스로 제도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심각한 고민을 해본 적 없이 새로운 사회를 무방비로 맞이했다. 그 결과 기술혁명에 조응하는 사회혁명을 준비하지 못한 채 우리 민주주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과 비효율을 노출했다. 그것이 기존 민주적 규칙과 엘리트 체제를 전복하는 우파 포퓰리즘의 득세를 허용했는데, 이런 반혁명이 지난 100일간의 혼란의 실체라고 보여진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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