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기업은행(024110)이 올해 경영평가 목표를 일부 하향 조정하면서 은행장실 점거 농성을 벌였던 노조가 열흘 만에 농성을 해제했습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동조합은 지난달 17일 경영평가 목표가 너무 과도하다며 은행장실 점거해왔습니다. 이후 같은 달 26일 사측과 목표치 하향에 합의하면서 농성을 푼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노사, 농성 열흘 만에 실적목표 하향 합의
노조는 그간 사측이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퇴직연금과 신용카드 실적 목표 등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으며, 이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가 과중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당초 기업은행이 발표한 경평 목표를 보면 비이자수익, 외국환, 기업신규고객수, 개인영업수익, 핵심예금 등으로 구성한 핵심 지표 30개 중 퇴직연금 운용성과와 카드목표대금을 전년 대비 각각 14%, 3%씩 높였습니다.
퇴직연금 운용성과와 카드목표대금의 경우 영업점 직원들이 실적을 쌓기 어려운 업무로 꼽습니다. 퇴직연금은 통상 기업이 주거래 은행에 불입하다 보니 실적을 늘리려면 타 행에서 퇴직연금을 운용하던 기업을 빼와야 합니다. 카드목표대금 역시 고객에게 기업은행 카드 사용을 독려해야 하는 부분이라 목표치를 채우기 쉽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사측은 이미 영업점별로 경평 목표가 제시된 상황이라 변경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으나, 노조의 농성이 길어지면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당초 노사간 이견이 있었으나 최근 불확실한 경기상황 등을 감안해서 경영목표를 일부 수정해 노동조합과 협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정확한 수치는 밝히기 어렵지만 노조가 사측에 경평 목표를 완화하라고 지속 건의하고 투쟁한 결과 사측이 경평 목표를 소폭 내렸고 극적 합의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은행 노조가 은행장실 앞 점거 농성을 벌이던 모습. (사진=기업은행지부)
임단협 난항에 노사 갈등 불씨 여전
다만 은행장실 앞 점거 농성 외 총액인건비제도 개선 등 임금 및 단체협약에 대한 협상은 여전히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기업은행 노조는 현재까지도 은행 본점 앞에서 무기한 천막 농성을 이어가며 총액인건비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총파업을 단행했음에도 여전히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상태여서 추후 노사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총액인건비제는 일정 금액 내에서만 인건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정부가 관리하는 금융 공공기관인 기업은행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노조는 이 제도로 인해 민간 시중은행 대비 임금 격차가 커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업은행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시중은행 대비 30% 이상 낮은 수준입니다.
노조는 특별성과급 지급과 함께 이를 위한 기타 공공기관 해제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타 공공기관에서 해제될 경우 총액인건비제 적용을 받지 않아 성과급 지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업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조7000억원에 달했지만, 기획재정부가 가져간 배당금이 1조1000억원을 넘어서면서 직원들에게 지급된 특별성과급은 사실상 0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기업은행만을 예외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김성태 기업은행장도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조는 총액인건비제 개편을 위해 정치권과 접촉도 늘리고 있습니다. 류장희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지난 1월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기업은행 총파업 사태 해결 촉구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류 위원장은 그러면서 "기업은행은 민간은행과 똑같이 경쟁하는 구조지만, 총액인건비제 적용으로 인해 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며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국책은행이라는 이유로 직원들의 급여가 일방적으로 제한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공공기관 운영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건비를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노조가 원하는 수준의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적인 단체행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현재 총파업 그리고 그 이상의 투쟁도 염두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경영평가 목표 설정을 두고 대립하던 기업은행 노사가 극적 합의했다. 사진은 기업은행 본사 앞에서 노조가 투쟁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