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우방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세계 경제가 'R(recession·경기침체) 공포'에 이어 'S(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공포' 그림자까지 짙어졌습니다. 실제 독주하던 미국 경제는 최근 주요 경제 지표가 시장 전망치를 밑돌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데요. 시장에서는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성장률을 낮추고 물가는 끌어 올리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합니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투하되기도 전에 내수가 쪼그라들며 경기침체 신호가 뚜렷해진 한국 경제 입장에선 내우외환의 위기가 더 짙어졌는데요.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을 '콕' 집어 거론, 한국 경제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미 각종 경제 지표 그림자…고개드는 미국발 'S 공포'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수십 년간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놓여왔다고 주장하면서 상호 관세를 비롯한 관세정책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거듭 확인했습니다. 그는 "다른 국가들은 수십 년 동안 우리에게 관세를 부과해왔고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관세를 부과할 차례"라고 못 박았습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관세전쟁이 본격화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날 우방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중국산 제품에는 기존 관세에 붙는 추가 관세를 10%에서 20%로 높였습니다. 미국 국익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면 동맹이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든 가리지 않고 관세전쟁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관세맨' 트럼프의 행보가 미국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규제 완화와 친시장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랠리를 이어가던 자산 시장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으며 사상 최고가를 찍었던 미 증시의 상승세도 주춤하고 있습니다. 가상자산 대표주인 비트코인은 8만2000달러까지 후퇴했고 뉴욕 3대 주가지수는 낙폭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경제 지표에서도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에 따르면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3으로 전월(50.9)보다 0.6포인트 하락했습니다. 신규 수주 물량은 줄고 원자재 등 비용 부담이 커지며 제조업체들의 경기 전망이 후퇴한 것입니다. 또 지난 1월 소비자물가(CPI)는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하면서 지난해 6월 이후 다시 3%대로 올라섰습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TBL)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을 분석하며 물가 수준이 1.0~1.2% 상승, 가계 부담이 평균 1600~2000달러(약 232만~290만원) 늘어날 것이라는 추산까지 내놨습니다.
시장에서는 미국발 글로벌 'S 공포'가 고개를 들고 있다고 우려합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경제에 위험 신호가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한두 달간 미국 경제 지표가 계속 부진할 경우 미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고 마크 해켓 네이션와이드의 수석시장전략가는 "시장에 닥친 가장 큰 위험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수 휘청이는데 트럼프까지…한국 '콕' 찍어 관세 불공정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투하되기도 전에 경기침체 신호가 뚜렷한 상황에서 향후 트럼프 리스크는 한국 경제에 큰 부담입니다. 지난 4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연초부터 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부진하며 '트리플 감소'를 기록, 경기침체의 신호가 한층 뚜렷해졌습니다. 산업 지표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두 달 만이며 감소 폭은 코로나19 때만큼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국가가 우리가 그들에 부과한 것보다 훨씬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 매우 불공정하다"며 인도와 중국 사례를 거론한 뒤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주장하며 한국을 '콕' 집어 거론했습니다.
한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무역 흑자 8위를 기록 중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달러(약 81조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FTA를 체결하고 있어 절대 다수 품목에서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4배'의 근거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지만, 한·미 무역 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은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부가 알래스카주의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일본, 한국과 다른 나라들이 각자 수조 달러의 투자를 통해 우리의 파트너가 되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이 사업에 한미일 공동 개발 형태로 참여하는 방안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아직 참여 여부를 확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투자 압박으로, 향후 한국의 참여와 재정적 기여를 촉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미국 경제 지표들이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신호를 보내는 가운데,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만약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중국의 디플레이션(Deflation·물가하락 속 경기침체)으로 세계 경제가 리세션 국면에 진입한다면 한국 경제는 수출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서 경제 성장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김태은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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