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첫 노동자 대통령'과 중도보수 선언
2025-02-25 06:00:00 2025-02-25 06:00:00
때 아닌 이념 논쟁이 한창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 정체성을 '중도보수'라고 선언한 것이 시작입니다. 이 대표는 지난 18일 한 유튜브에 출연해 "우리는 진보가 아니다.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실제로 갖고 있다.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밝힌 것이 출발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이튿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났을 때도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했습니다.
 
중도보수 논쟁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언론과 평론가들이 분석하고 있으니 구태여 말을 더 보태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2017년 이 대표의 대선 출마선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이제 기억하는 분들이 드물겠지만(어쩌면 이 대표조차 잊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한국 최초의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2017년 봄. 박근혜씨가 국정농단 사태로 헌법재판소로부터 대통령직 파면을 당하자 정국은 조기 대선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당시 이 대표는 성남시장이었습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은 혹시라도 있을 민심의 역풍을 우려하며 몸을 사렸지만, 이 대표는 달랐습니다. 날마다 촛불을 들고 "박근혜 탄핵"을 외쳤습니다. 속 시원한 그의 사이다 발언에 지지율도 날마다 치솟았습니다. 본인 말마따나 '변방 장수'에서 '유력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겁니다. 이 대표는 19대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이 대표는 2017년 1월23일 자신이 소년공으로 일했던 경기도 성남시의 한 시계공장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재벌들의 부당한 불법 이익을 모두 환수해야 한다. 대한민국 첫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약자를 위한 대통령, 금기·불의·기득권에 맞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내 유력 주자였던 문재인 후보는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안희정 후보는 대학로 한 극장에서 '민주당 적자'와 젊은 리더십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만큼 자신의 굴곡진 인생과 대통령의 비전을 적확하게 수미상관으로 연결해 출마선언 장소를 선택하고, 포부를 드러낸 이는 없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 시계공장에서의 그의 연설과 그가 흘린 눈물은 초년병이었던 기자의 가슴도 뛰게 만들었습니다. 이 대표가 그 날 말한 "한국 첫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할 때의 진정성은, 지금도 믿고 싶습니다. 
 
이 대표에게 대통령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19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는 3위를 기록해 고배를 마셨습니다. 5년 뒤 20대 대선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습니다. 이 대표에게 21대 대선은 마지막 도전일 겁니다. 그는 대선을 위해 모든 걸 다 걸겠다는 심산입니다. 이른바 우클릭 논란 역시 대선에 '올인'한 이 대표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했습니다. 복잡한 사회·경제적 여건과 난해한 정치상황에선 타협과 정치적 상상력이 필수입니다. 이 대표에게도 중도보수 선언이 타협과 정치적 상상력의 결과물일 겁니다. 그런데 감동도,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 건 왜일까요. 타협과 정치적 상상력은 결국 '시대정신'으로 귀결돼야 합니다. 민주당이 자랑하는 김대중정신, 노무현정신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이 대표에게는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닙니다. 시대정신에 대한 설득이 먼저입니다. 
 
최병호 공동체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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