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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선망의 대상이지만 질시가 담겨있다. 가수, 무용가, 배우, 코미디언 등 연예인을 얕잡아 부르는 ‘딴따라’에는 대중의 이중적 욕망이 숨어 있다.
누구나 되고 싶어 하지만 쉽게 될 수 없는 직업이 연예인이다. 선망의 직업이지만,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 인기를 얻는 순간 질투와 시기가 솟아오른다. 얼굴이 팔렸으니 ‘막 대해도 된다’는 요상한 보상심리가 든다. 그러면 대중의 머릿속에는 연예인은 그저 ‘딴따라’가 된다.
연예인을 ‘딴따라’로 폄하하는 것은 기성 세대만이 아니다. 청년 세대도 다를 바 없다. 세대를 아우르는 이 기묘한 ‘연예인 멸시’라는 공통점은 박탈감이 요인으로 지목된다. 별로 한 일도 없는 듯한데, 타고난 외모로 ‘운 좋게 떠서’ 자신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신흥 기득권층’이라는 질투가 대중 심리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못한다. 연예인에서 ‘딴따라’로 급전직하는 순간이다. 가혹한 비판이 쏟아진다. 선을 넘는 비난과 멸시가 벼락처럼 쏟아진다.
그래도 된다. 이제 연예인이 아니라 ‘딴따라’니까. 대중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여배우의 빈소에 2월17일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사진=뉴시스)
문제는 가학의 재생산이다. 대중의 질투를 악용해 돈벌이에 나서는 ‘악인들’이 필수적으로 붙는다. 법원 판결로 죗값을 치른 뒤 연예인은 다시 대중 앞에 서려고 한다. 재기를 조심스럽게 꿈꾼다. 그런데 ‘뻔뻔하다’는 명목으로 무차별 공격을 당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이나 글이라도 올리면 ‘이 때다’ 싶은 하이에나들이 유튜브 등에 큼지막한 글자에 잘 보이는 노란색을 입혀 클릭을 유도한다. 잊은 듯싶던 악성댓글이 전염병처럼 창궐한다. 돈벌이에 낚인 대중은 익명을 무기로 스트레스를 풀 상대를 만나고, 연예인은 순식간에 다시 양심 없는 인간이 된다.
‘감정 쓰레기통’이 된 연예인은 재기를 꿈꾸지도 못하고, 나락에 빠져 든다. 그 사이 하이에나들의 주머니는 열광적인 클릭질에 돈으로 빼곡히 채워진다.
스물다섯살 젊은 배우가 유명을 달리했다. 아역배우로 시작해 뛰어난 연기로 기대를 모았지만, 음주운전 사고로 온 세상의 미움을 강철비처럼 맞아야 했다.
물론 음주운전은 마땅치 않은 일이다. 잘못은 잘못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등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다. 앞날이 창창한 만큼 한번쯤 용서를 해줄 만도 했다.
배우 일이 끊긴 뒤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세상의 관심이 무뎌질 법도 했지만, 움직이기만 해도 유튜브 등에 오르내리며 의도치 않게 세상으로 붙들려 나왔다.
타인의 불행을 돈벌이로 삼는 이들에게 인간의 양심에 호소해 봤자 될 일도 아니다. 법적 대응으로 맞서려 해도, 그 사실 자체도 확대 재생산으로 돈벌이에 열중하는 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일만 오히려 키울까 싶어 연예인은 두렵기만 하다.
무차별적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를 일삼는 유튜버 등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필요한 때가 왔다. 규제가 만능은 아니지만, 남의 불행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유튜버 악인들’에 대한 법률 제정이 시급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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