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탄소세' 도입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국내 철강·자동차 산업군 등 관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20일(현지시간)부터 보호무역주의와 관련된 ‘보편관세’ 등 각종 행정명령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추가 관세 도입까지 거론되면서 대미 수출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 전야 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강력한 관세 부과와 함께 탄소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2기 첫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스콧 베센트 지명자는 지난 16일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관세 정책에 탄소세를 포함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외국 오염 수수료’(foreign pollution fee)에 대한 질의에 “전체 관세 프로그램의 일부가 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건데요. 질의 자체가 중국을 겨냥한 내용이었지만 탄소세가 관세 정책에 추가되면 우리 철강 수출에 영향이 가중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설정된 무역확장법 232조로 인해 철강 수출의 쿼터(수입할당)를 적용받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현재 263만톤의 철강 수출에 대해서만 무관세를 적용받습니다. 이처럼 수출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탄소세까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 떨어져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탄소세가 부과되면) 미국 내 제품 가격이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가격 경쟁력으로 인해 미국 내 수요가 줄어 수출 쿼터를 다 채우지 못하는 등의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철강업계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내년 본격 시행 등 불확실성의 위기에 직면한 상태인데요. 여기에 미국발 탄소세 도입 검토 우려에 또 다른 도전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미국의 탄소세 도입은 자동차업계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동차가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은 아니지만, 공정에서 탄소가 많이 발생하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탄소세 부과 목적에 따라 영향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보편관세와 탄소세를 가중 부과해 완성차의 수입을 줄이고 IRA 폐지·축소로 보조금을 회수하면서 자국 자동차 산업 보호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귀결됩니다.
다만, 미국이 탄소세를 부과하더라도 국내 산업계에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장현숙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신무역전략실장은 “탄소세라고 하면 모든 품목에 관세를 물려 수출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적용할 수 있는 품목이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해당 품목들도 우리가 미국 시장에 내재화를 많이 시켜놔서 대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습니다.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사진=현대차그룹)
모든 수입품 10~20% 관세 부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보편관세 등 100여건에 달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돼 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미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한 보편관세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고 공언해 왔는데요. 수입 장벽을 높여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늘어난 관세로 법인세 인하 등 경제 활력을 제고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의 윤곽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모든 외국산 수입품에 10~20%의 관세(보편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25%, 중국에는 6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유력시됩니다. 현재 미국 수입품의 평균 관세율은 약 2.4% 수준인데요. 보편관세가 현실화 할 경우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품의 관세는 약 5~8배가량 인상되는 셈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6일 ‘트럼프 2기 관세정책의 리스크 점검 및 대응’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2기 행정부과 관세 인상,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축소 등을 예고함에 따라 우리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는데요. 이어 “과격한 수입 관세가 현실의 장벽 앞에 축소·수정될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행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도 “관세정책이 트럼프 정부의 핵심 경제·외교 정책이고 강력한 추진 의지를 가진 점을 감안할 때 낙관적 기대보다는 상당 수준 이행될 것을 전제로 보수적으로 접근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트럼프 보편관세의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각각의 관세 시나리오에 따른 대미 수출 감소 효과는 9.3~13.1%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됐는데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10% 보편관세와 60% 대중국 관세 부과 시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152억달러(약 22조2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한국의 대미 수출뿐 아니라 제3국에 구축한 공급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전기차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인 천연 흑연의 경우 중국 수입 비중이 97.9%에 달하는 등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요. 중국산 광물에 대한 관세가 강화될 경우 국내 기업이 미국에 구축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의 원가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멕시코의 상황도 비슷한데요. 25%의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등이 멕시코에 공장을 운영하며 북미 시장 수출 전초기지로 삼고 있는 국내 기업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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