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세웅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 하자 윤씨는 경호처 뒤로 숨어 버렸습니다. 윤씨 측은 이후 관저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한편, 영장을 청구하고 집행하는 데 나섰던 공수처·경찰 관계자 150여명을 고발하겠다며 역공에 나섰습니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던 본인의 말과는 정반대의, 체포와 법적 책임 앞에서 비루한 행보만 거듭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씨 체포 영장 집행 시한을 하루 앞둔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길목에 설치된 철조망.(사진=뉴시스)
공수처는 지난 3일 윤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오전 6시14분쯤 정부과천청사를 출발, 오전 7시2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도착했습니다. 영장 집행에는 이대환 공수처 부장검사를 비롯한 공수처 인력 30명과 경찰 인력 120명이 투입됐습니다. 이 가운데 80명이 오전 8시2분쯤 관저의 1차 철문과 바리케이드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관저에서 경호처가 인간벽으로 만든 '2차 저지선'을 뚫지 못했습니다. 5시간 이상 대치한 끝에 공수처는 이날 오후 1시30분쯤 영장 집행을 중지한 뒤 철수했습니다.
공수처가 철수한 후 주말 동안 윤씨 측은 관저를 철조망으로 두르는 한편, 영장 집행에 나섰던 관계자들을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4일 윤씨 관저 출입구 부근엔 원형 철조망이 설치됐습니다. 윤씨 대변인단은 5일 입장문을 내고 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 관계자 등 150여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치상·특수건조물침입·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씨의 이런 모습은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던 것과 정반대의 행보입니다.
윤씨는 지난해 12월7일 대국민 담화에서는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5일 뒤인 12월12일 담화에서는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다"며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해서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이미 말씀드린 바 있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윤씨의 행동은 말과 다릅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와 내란죄 수사 모두에서 노골적인 시간 끌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당하겠다"는 말은 사라졌고, 체포와 법적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비루한 꼼수만 부리고 있는 겁니다.
탄핵 심판에서는 헌재의 서류 송달부터 거부하며 절차를 지연시켰습니다. 참다못한 헌재가 '서류가 송달됐다'라고 간주하고, 첫 변론준비기일을 열자 그제야 변호사 선임계를 제출했습니다. 변호사들은 '탄핵소추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 '계엄 선포 과정에 헌법과 법률 위반이 없고, 있더라도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는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내란죄 수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씨는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세 차례 거부했습니다. 공수처가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집행에 나서자, 윤씨 측은 영장은 불법 무효라고 주장하며 경호처를 이용해 집행을 막아섰습니다. 공수처에 따르면 윤씨 변호인단은 관저 앞까지 갔던 공수처 검사들과 만나 조속한 시일에 선임계를 낼 테니 이후에 절차를 협의하자고 했습니다. 윤씨 측이 '영장은 불법 무효'라며 지난 2일 법원에 낸 영장 집행 이의신청은 5일 기각됐습니다.
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시민들이 1박2일 철야투쟁을 하며 윤석열씨에 대한 즉각 체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씨가 체포영장 집행을 회피하자 공수처는 그의 신병을 확보할 방안을 놓고 장고에 돌입했습니다. 공수처에겐 체포영장 재집행과 기한 연장, 구속영장 청구 등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체포영장 재집행을 선택할 경우 공수처는 영장 기한 만료일인 6일엔 어떻게든 윤씨를 체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호처 반대에 막혀 실패할 경우 국민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공수처는 경호처의 반대를 뚫기 위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경호처가 윤씨 체포에 협조하라고 명령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최 권한대행으로부터 협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체포영장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마지막 카드는 구속영장 청구입니다. 구속영장을 발부받으면 경호처가 영장 집행을 막아설 명분은 더 줄어듭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경호처가 막아선다면 체포영장 집행 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된다면 윤씨 신병을 확보할 명분이 사라집니다. 구속영장은 일시적 체포가 아닌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영장이기 때문에 법원이 더욱 신중하게 판단할 걸로 보입니다. 자칫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공수처는 오히려 윤씨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한다는 역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세웅 기자 sw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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